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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시인 / 애인을 씹다
식물성의 당신과 육식성의 내가 연애를 하기로 한다
사슴을 사냥해서 사자가 먼저 먹는 부위는 위(胃) 그것은 오랜 공복에 대한 위로겠으나 네 개나 되는 위(胃)를 차례차례 정성껏 씹어 먹으며 사슴이 했던 반추시간을 되짚어 가늠해 보려는 건지도 되새김질의 자세로만 삶을 유지해 온 사슴에게도 인내의 끝에 맞이한 한 끼 식사로 사슴의 내장을 씹고 있는 사자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가 곧 죽고 사는 문제였으니
남의 살이 이토록 맛있게 느껴지는 게 내 모든 비극의 시작 여름이 몸집을 불려가는 동안 허공에서 드라이에이징되는 심장 두 개 당신의 채식에 나의 육식이 곁들여질 때마다 맹수의 날 선 이빨같은 죄책감이 문득문득 나의 살을 파고들었고 당신과 내가 이렇게 다르다는 걸 먹고 사는 문제가 되새겨줄 때 우리 연애는 끝난다
잘 먹고 잘 살라는, 처절한 마지막 인사
공복을 살찌우는 밤 한때 애인이었던 당신을 여물씹듯 되새김질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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