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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리영 시인 / 푸른 셔츠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5.

이리영 시인 / 푸른 셔츠

 

 

당신의 셔츠가 참 푸르다 생각하며 그 생각에 오래 머물다 보니 입이 마르고 그만 셔츠에 손을 담그고 싶어져

 

가본 적 없는 바닷가와 그곳을 떠도는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등지려는 뒷모습들과    

 

셔츠의 단추는 금세 날아가 버릴 듯 새하얗고

 

당신은 단추를 다 채우는 사람, 자두를 한입 베어물고도 소매를 걷지 않는 사람, 반듯한 깃 아래가 맑게 차오른 사람, 깃 끝 채워진 아주 작은 단추를 만지작거리는 사람, 구김살 없이 감춰진 셔츠 끝단을 바지 위로 더듬는 사람, 당신은 어젯밤 머리맡에 한 컵 따라 놓은 물처럼  

 

미지근한 셔츠에 팔을 서둘러 넣고는 푸른 소매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것들을 오래 생각하다 그만 발밑에 컵을 엎지르고 발이 젖어 젖은 발로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서면    

 

가본 적 없는 바닷가와 그곳을 누르는 둥근 자갈들과

 

그 자갈 위를 영원히 뒹구는  

 

내 손아귀에서 자두 씨가 말라가고   

 

그 물기에 손바닥이 잠시 푸르러지는

 

웹진 『시인광장』 2020년 2월호 발표

 

 


 

이리영 시인

2018년 《시인동네》 신인문학상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