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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시인 / 도마를 연주하다
칼을 만나 노랠 부를 시간이군요 도마가 나란히 꽂힌 무료급식소 요셉의 집 베어져 끌려오던 비탈의 소리가 들리나요, 들리지 않나요
움푹 파이고도 파인 줄 모르고 살아오다 남겨진 물때 자국 말리고 있군요
단단한 박달나무 도마일 거라고 목소리 허기진 도시의 새들 지저귀네요 제 나름 칼날 눈 비탈 미끄러져 여기까지 왔다고 젖은 칼은 허기를 물고 뛰어다니죠 한술 떠 넣기 전 당신 입술은 이미 악기죠 토막 난 음식들 새의 모이통에 채우다가 정오가 지나 고단해진 도마들 또 요셉의 베란다에서 젖은 몸을 말리겠죠 이 동네에서 언제쯤 등 시리고 배고픈 사람들 하나 둘 사라질까요
월간 『모던포엠』 2020년 1월호 발표
김건희 시인 / 노을의 악보
사문진 나루의 노을은 철새의 건반이다 물비늘 털며 날아오른다
어금니로 문 물고기들 비늘로 음계를 토해낸다
어제를 건너와 내일로 가는 강물은 애정의 꽃으로 벙글고 싶어 달포에 한 번씩 하얗게 씻기는 모래와 자갈 칸칸의 건반에 물결을 가둔다 와글와글 생리 혈 쏟아낸다
눈발도 반나절 이상을 맨발로 서성이다 하늘로 간뒤 강물에 던진 건 아픈 돌 하나
강물은 이제야 집에 이르렀다는 전화 벨소리 나를 떠난 당신이 건넜을 여러 개의 별자리가 신호를 보내왔다
나른하던 강의 하복부는 물새가 차고 날아오르는 수면에서 찌르릉찌르릉 별빛 건너 밟는 통화음
노을 비친 강물에서 악보를 읽던 새는 힘 좋은 물고기를 들어 올려 완성되는 흑백의 연주
월간 『모던포엠』 2020년 1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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