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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인 / 자연(自然)
뉘라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는 내 얼굴에 가지 벋은 채 참말로 참말로 바람 때문에 햇살 때문에 못이겨 그냥 그 웃어진다 울어진다 하겠네.
춘향이 마음, 신구문화사, 1962
박재삼 시인 / 죽세공(竹細工) 노래
이 병신아 이 병신아 뭣하고 살았노 내 눈에 금(金)빛 열매 열리는 매미 운다.
햇빛과 바람을 친하였던 천갈래 만갈래의 댓살을 다스리어 먼 강물은 들판을 도는가, 청춘은 다 가고 빈 바구니를.
내 천치나 네 천치나 별 수 없는 캄캄한 숲을 헤쳐 매미가 손끝에 와선 내 울음을 운다.
햇빛 속에서, 문원사, 1970
박재삼 시인 / 찬란한 미지수(未知數)
저 나뭇잎이 뻗어가는 하늘은 천(千)날 만(萬)날 봐야 환장(換腸)할 듯이 푸르고 다시 보면 얼마나 적당한 높이로 살랑살랑 미풍(微風)을 거느리고 우리 눈에 와 닿는가. 와서는, 빛나는, 살아 있는, 물방울 튕기는, 광명(光明)을 밑도 끝도 없이 찬란히 쏟아 놓는가. 이것을 나는 어릴 때부터 쉰이 넘는 지금까지 손에 잡힐 듯했지만 그러나 그 정체(正體)를 잘 모르고 가다가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가운데 반쯤은 명상(瞑想)을 통하여 알 것도 같아라. 그러나 다시 눈을 뜨고 보면 또 다른 미지수(未知數)를 열며 나뭇잎은 그것이 아니라고 살랑살랑 고개를 젓누나.
찬란한 미지수, 오상사, 1986
박재삼 시인 / 찬란한 반짝임만
구름은 비탈진 산길을 따라 한가한 가락을 피우면서 빙빙 돌아 올라가서는 숨막히는 녹음의 봉우리에 아득히 묻혀들고 말았다.
그렇다, 너를 사랑하였을 적에는 나에게도 신바람나는 장단으로 머리카락이 바람에 출렁대기도 하더니 결국은 바다에 드는 강물로서 그 소리 없어지고 찬란한 반짝임만 남을 일이다.
천년의 바람, 민음사, 1975
박재삼 시인 / 천년(千年)의 바람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 년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천년의 바람, 민음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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