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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재삼 시인 / 추억(追憶)에서 외 4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1.

박재삼 시인 / 추억(追憶)에서

 

 

진주(晋州)장터 생어물(魚物)전에는

바다밑이 깔리는 해다진 어스름을,

 

울엄매의 장사끝에 남은 고기 몇마리의

빛발(發)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銀錢)만큼 손안닿는 한(恨)이던가

울엄매야 울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맞댄 골방안되어

손시리게 떨던가 손시리게 떨던가.

 

진주남강(晋州南江) 맑다 해도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

 

춘향이 마음, 신구문화사, 1962

 

 


 

 

박재삼 시인 / 추억에서  8

 

 

바닷물이 할퀴고 간 흔적 중에

돌멩이에 게구멍 같은

침식(浸蝕)의 자국을 내고 있는 그것이

분명 오랫동안을 바다 속에 있다가

뭍에 나와 돌고 돈 다음

우리 앞집 돌담에 박혔었다.

그것도 공교롭게 아주 밑에 박혔었다.

 

우리 개구장이들은

거기에 대고 오줌을 깔기는

그 짓을 심심찮게 했다.

얼마 안 가 그 구멍에는

오줌의 꽉 차고

그것이 넘어나는 것을

작은 해일(海溢)처럼 희한하게 바라봤다.

그리고는 곧

오줌 누는 장난도 끝나는 것이었지만

오줌을 누면서 그릇과 같은 것에 넘어나는 행위(行爲)를

우리는`이겼다'고 치부하고 있었다.

이 어리석음이

쟁쟁쟁 빛이 되어

가늘은 가지가 되어

한없이 햇빛 속에 뻗어나고 있었다.

 

추억에서, 현대문학사, 1983

 

 


 

 

박재삼 시인 / 추억에서 12

 

 

벼이삭이 누렇게 처지고

감이나 대추가 알알이 익을 무렵

그 땅임자는 이 세상에서

황금(黃金)을 거두는 알부자가 되고

멀리 바닷가에서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도

그 소리를 길어 내고 있었다.

쟁쟁쟁 그득히 거두는

황홀밖에는 딴 것이 없었다.

 

늦가을 바다 위에는

온통 수런거리고

야단법석을 떨더니,

그것은 자세히 보면

우리의 바다만 남게 하고

차츰 콧노래를 심어 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드디어는

눈물꽃만 지천으로 피어 있는

환장할 것 같은

스산하고 망하는 기운을

속속들이 맛보는 쓸쓸함이여.

 

추억에서, 현대문학사, 1983

 

 


 

 

박재삼 시인 / 추억에서 19

 

 

봄볕이 연한 물감을 칠하며 칠하며

자꾸 뒤로 물러앉는 한낮

집을 보면서 물속 같은 고요에 빠지며

나는 점점 작아졌다.

마을이 없어지며 골목과 집이 없어지며

드디어는 네모난 천장만 남아

그것이 폭삭 내려앉을 것 같은

위태로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배경에는 분명 뒤채는 바다도 있었으련만

그런 것은 뿔뿔이 달아나고

어느새 한 마리 작은 나비가 되어

수천 수만의 날개짓만 눈이 부시도록

열심히 숨가쁘게 남겼다.

그러나 진정

목숨의 오솔길을 끝없이 가고 있었다.

 

추억에서, 현대문학사, 1983

 

 


 

 

박재삼 시인 / 추억에서 25

 

 

예쁜 조개껍질을 줍고

희한한 돌을 캐며 놀던 그날도

그 노는 일에만 매달려

해가 지는 것이 아까왔는데

 

어른들은 바다에 안 나가는 날

부지런히 배 손질을 하며

의사처럼 그것을 눕혀 놓고

오래 가라고 불길로 배 밑을 다지는데,

 

또 어떤 사람들은

할 일 없는 그것이 일이라

여기 저기 구경만으로

지겨운 하루해를 보내었는데

 

그러나 하늘의 해는

그런 것 저런 것을 구별하지 않고

사람마다 완전히 똑같게

골고루 볕을 베풀다가

때가 되자 일제히

무슨 밧줄이나 되듯이

서서히 밤 쪽으로 당겨들이는 것이었다.

 

추억에서, 현대문학사, 1983

 

 


 

박재삼 (朴在森. 1933년-1997년) 시인

박재삼의 유년시절은 시련의 연속이었다. 사천 앞바다의 품팔이꾼 아버지와 생선장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중학교 진학도 못하는 절대궁핍을 경험해야 했다. 어렵게 삼천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중퇴, 1953년 〈문예〉에 시조 〈강가에서〉를 추천받은 후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섭리〉·〈정적〉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1955년부터 〈현대문학〉 등에 근무하다 1968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마비. 처녀시집 〈춘향이 마음〉 이후 〈뜨거운 달〉·〈찬란한 미지수〉·〈햇빛 속에서〉〈천년의 바람〉·〈비 듣는 가을나무〉·〈해와 달의 궤적〉·〈다시 그리움으로〉에 이르기까지 시집 15권과 수필집 〈차 한잔의 팡세〉를 냈으며, 현대문학상·한국시인협회상·노산문학상·인촌상·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1996 제4회 한국공간시인상 심사위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