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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기성 시인 / 당신들의 합창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0.

이기성 시인 / 당신들의 합창

 

 

 며칠 동안 태양이 사라졌네. 우우우 울어대며 도시를 흘러넘치는, 이것은 당신들의 이야기 목발을 짚고 거리를 점령한 비의 탄식들 구겨진 종이에 번지는 불규칙한 박동, 당신은 비의 구두를 신고 젖은 골목을 뛰어 다닌다, 사라진 태양을 찾아 하루 종일 빙빙 도는 이야기와 이야기를 따라 달리는 휴일의 검은 버스처럼, 잠든 당신을 태우고 허공으로 휙, 흰 공처럼 몸을 떨며 흩어지는 노래들, 썩은 노래의 이빨 철근 기둥을 갉아대고 쉭쉭 바람의 뼈가 날아가고 당신의 눈엔 낯선 눈물이 고이고 있어, 우르르 검은 배관에서 쏟아져 나오는 당신들 그러나 밤의 텅 빈 입에서 우우우 퍼져 나오는 이것은 우울한 독백, 거리를 점령한 눈물은 녹슨 태양의 것 그리고 머나먼 밤의 빛나는 꼬리, 창백한 종이에서 타오르는 마지막 불꽃, 흘러내린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이기성 시인 / 하루

 

 

  하루는 겨울을 기다리고 무수한 밤의 얼굴이 타오른다. 꽃들이 붉게 피었다 떨어지고 하루는 언제나 하루이고 겨울은 오지 않고 하루는 눈물을 흘린다. 물 속의 눈물, 기침을 하면서 흰 실을 잣는 공장의 여인들처럼. 하루와 하루 사이에서 그녀들은 털실처럼 가득 흩날리고. 하루는 어제처럼 빛나는 것. 구름처럼 흐릿하고 몰락하는 것. 소금사막처럼 발목이 푹푹 빠지는 것. 하루는 시멘트 벽돌처럼 우르르 무너지고, 공중의 실뭉치처럼 함부로 굴러간다. 영원의 검은 구멍 속으로 빠지기 위해. 하루의 얼어붙은 심장 실처럼 뚝 끊어지고 무구한 태양의 입술이 녹슨 철로 위로 굴러 떨어질 때 하루는 애들의 저녁 요람에서 구슬프게 운다. 무서워서 하루의 희고 긴 머리카락이 마구 흘러내린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이기성 시인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이화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98년 『문학과사회』에 「지하도 입구에서」 등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시집으로 『불쑥 내민 손』(문학과지성사, 2004)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