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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강기원 시인 / 책 읽는 남자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0.

강기원 시인 / 책 읽는 남자

 

 

  실직은 질식이다

  목을 죄던 것들이

  어느 날 툭 끊어졌는데

  이번엔 보이지 않는 손이

  온종일 그의 목을 조인다

  보이지 않는 손은

  보이는 손보다 더 집요하다

  아침마다

  단정히 넥타이를 매고

  서류가방을 들고

  아내의 배웅을 받으며

  그는 집을 나선다

  아침 아홉 시 입실

  밤 아홉 시 퇴실

  매일 밤 늦는

  그의 귀가를 기다리며

  아내는 야근수당을 기대하리라

  도서관 그 자리엔

  언제나 그가 있다

  책보다는 창 밖에

  멍한 시선 자주 보내는

  말쑥하고 창백한

  높은 도수 너머의 그가

  자주 목덜미를 문지르는 그가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강기원 시인 / 뒤집힌 게

 

 

  이 뻘은

  왜 이리 딱딱한 것이냐

 

  내게 눕는다는 건

  뒤집어진다는 것

  뒤집어진다는 건

  끝 없이 발버둥쳐야 한다는 것

 

  편히 한 번 누워보는

  단순한 일이

  내게는 죽음이다

 

  집게발 높이 들어

  허우적거려도

  허공은 일으켜줄 손이 없다

 

  껍질 속에 갇힌 수줍은 내가

  나의 전부인 듯

  눈알을 뽑아 올려도

  사방은 벽돌뿐

 

  도시의 뻘에서는

  소음과 스모그가 피어오른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강기원 시인

1958년 서울에서 출생하여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1997년 『작가세계』 신인상에 『요셉 보이스의 모자』 외 4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으로 『고양이 힘줄로 만든 하프』(세계사, 2005)와 『바다로 가득 찬 책』(민음사, 2006)이 있다. 2006년  제25회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