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성만 시인 / 청동기의 아침
가늘게 등불 흔들리는 집 흐린 거울 속에서 나는 낮은 울음소리를 낸다
밤새 나락을 지고와 노적가리를 쌓는 아버지 우물가 장독대 심지어 댓살 문까지 정교한 꽃 장식을 하는 어머니
나는 또 삼촌이 첫날밤을 보내던 방 돌아가신 할머니가 똥을 싸놓고는 호랭이 호랭이 아이고 무서라 기어들어가던 아궁이 백제 후백제 고려를 지나 임진년 동학난리 빨치산을 거치는 동안에도 줄곧 집터였을 자리 빗살무늬 강물처럼 흘러가는 어둠을 그리워한다
커다란 거푸집 같은 세상
희붐한 창문마다 햇솜 쌓이면 숫눈길 짚어 물 길러간 아버지 타드락타드락 불 지피는 어머니 허리 아래가 따끈한 아랫목에서 한 숨 더 자야겠다고 생각한다
더디 찾아오는 아침 그 안에 나는 없는지 맑게 씻긴 청동거울을 들여다본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고성만 시인 / 당신의 나무
불타오릅니다 국밥집 생맥주타운 소주방 횟집 밀집한 먹자골목 유리창 광고사진 속 아가씨의 옷이 너무 얇다고 화사하게 물든 가로수 분식집 아저씨 배달 가는 길 조심하라고 우수수 떨어집니다 노상방뇨 절대금지! 손바닥만 한 공터에 무와 배추를 가꾼 당신, 고향마을 입구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염색했다고 바스락거립니다 물기 말라버린 노인들 유모차에 손자손녀 대신 농기구를 실은 채 천천히 걸어가는 고샅 지겹게 오래 서있었으므로 힘겨운 일상 어떻게 살아야하나 뒤돌아보니 두 집 건너 숯불구이는 파리 날리는데 순간의 환상이나마 소중한 로또복권 가게는 그래도 붐비지 않느냐고 생애의 어느 한 때 숨이 멎을 듯 황홀하게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
'◇ 시인과 시(현대)'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박재삼 시인 / 추억(追憶)에서 외 4편 (0) | 2020.05.21 |
|---|---|
| 이기성 시인 / 당신들의 합창 외 1편 (0) | 2020.05.20 |
| 강기원 시인 / 책 읽는 남자 외 1편 (0) | 2020.05.20 |
| 김종미 시인 / 매화꽃나무 아래 매화꽃 외 1편 (0) | 2020.05.20 |
| 함순례 시인 / 처서, 저물녘 외 1편 (0) | 2020.05.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