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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조태일 시인 / 식칼론(論) 3 외 3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1.

조태일 시인 / 식칼론(論) 3

 

 

내 가슴 속의 뜬 눈의 그 날카로움의 칼빛은

어진 피로 날을 갈고 갈더니만

드디어 내 가슴살을 뚫고 나와서

 

한반도의 내 땅을 두루 두루 날아서는

대창 앞에서 먼저 가신 아버님의 무덤속 빛도 만나 뵙고

반장집 바로 옆 집에서 홀로 계신 남도의 어머님 빛과도 만나 뵙고

흩어진 엄청난 빛을 다 만나 뵙고 모시고 와서

심지어 내 남근(男根) 속의 미지의 아들 딸의 빛도 만나 뵙고

더욱 뚜렷해진 무적(無敵)의 빛인데도, 지혜의 빛인데도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누룩돼지는 눈이 멀어서

흉물스럽게 엉뎅이에 뿔돋친 황소는 눈이 멀어서

동물원의 짐승은 다 눈이 멀어서 이 칼빛을 못 보냐.

 

생각 같아서는 먼 눈 썩은 가슴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당장에 우리나라 국어대사전 속의 `개헌(改憲)'이란

글자까지도 도려파 버리겠다마는

 

눈 뜨고 가슴 열리게

먼 눈 썩은 가슴들 앞에서

번뜩임으로 있겠다! 그 고요함으로 있겠다!

이 칼빛은 워낙 총명해서 관용스러워서.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 시인 / 식칼론(論) 4

 

 

내 가슴 속의 어린 어둠 앞에서도

한번 꼿꼿이 서더니 퍼런 빛을 사방에 쏟으면서

그 어린 어둠을 한칼에 비집고 나와서

정정당당하게 어디고 누구나 보이게 운다.

자유가 끝나는 저 쪽에도 능히 보이게

목소리가 못 닿는 저쪽에도 능히 들리게

한 번 번뜩이고 한 번 울고

번개다! 빨리 여러 번 번뜩이고

천둥이다! 크게 한 번 울고

낮과 밤을 동시에 동등하게 울리고

과거와 현재와 까마득한 미래까지를

단 한 번에 울리고 칼끝이 뛴다.

만나지 않는 내 가슴과 너희들의

벼랑을 건너 뛰는 이 무적의 칼빛은

나와 너희들의 가슴과 정신을

단 한번에 꿰뚫어 한 줄로 꿰서 쓰러뜨렸다가

다시 일으키고 쓰러뜨리고 다시 일으키고

메마른 땅 위에 누운 나와 너희들의 국가(國家) 위에서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끌어다 놓고

더욱 퍼런 빛을 사방에 쏟으면서

천둥보다 번개보다 더 신나게 운다

독재보다도 더 매웁게 운다.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 시인 / 식칼론(論) 5

 

 

왜 나는 너희를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너희가 꺼리며 침까지도 빨리 뱉는

내 몸뚱아리까지도 아슬아슬한 재치로나마 쉽게 못 사랑하고

도둑의 그림자가 도둑의 그림자가 사알짝 덮치듯,

그렇게나마 못 만나고,

너희들이 피하는 내 땅과

내가 피하는 너희들의 땅은

한번도 당당히 못 만나는가

땅속 깊이 침묵으로 살아서

뼉다귀가 뼉다귀를 부르는

저 목마른 음성처럼,

땅 속 깊이 아우성으로 흐르는

저 눈물같은 물줄기가

물줄기를 만나는 끈기처럼

만나지 못하고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

내 홀로 여기 서서

뜨드득 뜨드득 이빨 갈듯이

내 정신만을 가는가

내 외로운 살결은 살결끼리 붙어서

시간을 가는가, 아아 칼을 가는가.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 시인 / 쌀

 

 

멍청하게 와 버린 봄빛 위에서

머리 푼 저 북풍은 살아 있다.

흰 이빨은 펄펄 살아 있다.

 

만인에게 후려치는 내 눈물보다도

더 예쁘고 날쌘 남도 평야는 살아 있다.

누런 땅빛은 영원히 살아 있다.

 

남루한 삼베 치마저고리를 걸친

저 누님 같은 아낙네의 살빛은 살아 있다.

그의 전신경은 펄펄 살아 있다.

 

눈을 감으면 어지럽게 쏟아지는

쌀은 펄펄 살아 있다.

쌀 속의 모든 사연은 살아 있다.

 

북풍이 봄빛을 깔아뭉개는 소리

내 눈물이 만인을 내리치는 소리,

쌀이 쌀을 살해하는 소리,

모든 소리들은 다 살아 있다.

 

펄펄 살아서 쌀은

내가 밤마다 훔치는 한국어를 노래한다.

뱀의 혀보다도 더 빨리 노래하며

내 온몸에 살아 있다.

 

식칼론, 시인사, 1970

 

 


 

조태일(趙泰一. 1941년-1999년) 시인

전남 곡성 출생. 1970년대 유신독재체제에 반대하는 시를 발표하고 여러 차례 옥고를 치러 '저항시인'으로 불렸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경희대 대학원 문학 석사학위(1985), 박사학위(1991)를 받음. 1962년 〈전남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1964년, 시 〈아침선박〉으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1969년 월간 시 전문지 〈시인〉을 창간해 김지하·양성우·김준태 등을 등단시킴. 1974년에는 고은·백낙청 및 신경림·염무웅·박태순·황석영·조해일 등과 함께 민족문학운동단체인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을 주도. 자유실천문인협의회는 1987년 9월 17일 창립된 민족문학작가회의의 모체가 됨. 1989년 이후 광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1994~1999 예술대학장을 역임.

시집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연가〉(1985), 〈자유가 시인더러〉(1987), 〈산속에서 꽃속에서〉(1991) 등을 펴냄. 〈풀꽃은 꺾이지 않는다〉(1995)로 제10회 만해문학상을 수상. 1991년 전라남도 문화상, 1992년 편운문학상, 1993년 성옥문화상, 1995년 만해문학상을 받음. 사후 보관문화훈장이 추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