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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종 시인 / 꿈으로 우는 거리
사람들이 말한다 사람들이 입에서 거미줄을 꺼낸다
그 거미줄에 걸려 죽은 사람의 그림자가 눈 감은 것처럼 어두운 세상
……그래도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본다 꿈으로 우는 거리를 꿈꾼다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2
정현종 시인 / 나는 별아저씨
나는 별아저씨 별아 나를 삼촌이라 불러다오 별아 나는 너의 삼촌 나는 별아저씨
나는 바람남편 바람아 나를 서방이라고 불러다오 너와 나는 마음이 아주 잘 맞아 나는 바람남편이지
나는 그리고 침묵의 아들 어머니이신 침묵 언어의 하느님이신 침묵의 돔(Dome) 아래서 나는 예배한다 우리의 생(生)은 침묵 우리의 죽음은 말의 시작
이 천하(天下) 못된 사랑을 보아라 나는 별아저씨 바람남편이지.
고통의 축제, 민음사, 1974
정현종 시인 / 나의 자연으로
더 맛있어 보이는 풀을 들고 풀을 뜯고 있는 염소를 꼬신다 그저 그놈을 만져보고 싶고 그놈의 눈을 들여다보고 싶어서. 그 살가죽의 촉감, 그 눈을 통해 나는 나의 자연으로 돌아간다. 무슨 충일(充溢)이 논둑을 넘어 흐른다. 동물들은 그렇게 한없이 나를 끌어당긴다. 저절로 끌려간다 나의 자연으로.
무슨 충일이 논둑을 넘어 흐른다
한 꽃송이, 문학과지성사, 1992
정현종 시인 / 낮술
하루여, 그대 시간의 작은 그릇이 아무리 일들로 가득 차 덜그럭거린다 해도 신성한 시간이여, 그대는 가혹하다 우리는 그대의 빈 그릇을 무엇으로든지 채워야 하느니, 우리가 죽음으로 그대를 배부르게 할 때까지 죽음이 혹은 그대를 더 배고프게 할 때까지 신성한 시간이여 간지럽고 육중한 그대의 손길. 나는 오늘 낮의 고비를 넘어가다가 낮술 마신 그 이쁜 녀석을 보았다 거울인 내 얼굴에 비친 그대 시간의 얼굴 시간이여,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그대, 낮의 꼭대기에 있는 태양처럼 비로소 낮의 꼭대기에 올라가 붉고 뜨겁게 취해서 나부끼는 그대의 얼굴은 오오 내 가슴을 메어지게 했고 내 골수의 모든 마디들을 시큰하게 했다 낮술로 붉어진 아, 새로 칠한 뼁끼처럼 빛나는 얼굴, 밤에는 깊은 꿈을 꾸고 낮에는 빨리 취하는 낮술을 마시리라 그대, 취하지 않으면 흘러가지 못하는 시간이여.
고통의 축제, 민음사, 1974
정현종 시인 / 냉정하신 하느님께
지난 해는 참 많이도 줄어들고 많이도 잠들었습니다 하느님 심장은 줄어들고 머리는 잠들고 더 낮을 수 없는 난장이 되어 소리 없이 말 없이 행복도 줄었습니다
그러나 저 납작한 벌판의 찬 흙 속에 한 마디 말을 묻게 해 주세요. 뜬구름도 흐르게 하는 푸른 하늘다운 희망 한 가락은 얼어붙지 않게 해 주세요 겨울은 추울수록 화려하고 길은 멀어서 갈 만하니까요 당신도 아시지요만, 하느님.
나는 별아저씨, 문학과지성사, 1972
정현종 시인 / 너는 누구일까
너를 보면 취한다 피와 기대에 취하고 성적(性的) 향기에 그 아지랑이에 취하고, 참 희한한 때도 있느니 세상 걱정이 없다 너는 누구일까
너는 바람을 넣는다 땅과 그 위의 길들에 바람을 넣고 심장과 발바닥에 그게 헤쳐가는 시간에 바람을 넣는다 너는 넘치는 현재 너는 누구일까
(제도의 공인(公認)으로 무죄를 비는 거야말로 외설이지 관습에 기댄 자기기만이야말로 외설이지) 저 자연을 보렴 저 찰랑대는 방심(放心)을 보렴 INNOCENCE 너는 넘치는 현재 너는 누구일까
사랑할 시간이 많지 않다, 세계사,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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