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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일 시인 / 겨울 새
하늘을 날아가던 새떼들 푸른 자리에 박혀 버렸다.
눈보라 속을 그 작은 눈으로 껌벅거리며
매운 눈물 흘리며 거기까지 날아갔으나 눈물까지 얼어붙어서 앞을 볼 수가 없단다.
어수선한 하늘을 그 작은 날갯짓으로 파닥거리며 가슴 두근거리며 날으고 날으고 날아갔으나 솜털까지 얼어붙어서 이젠 더 날아갈 수가 없단다.
겨울 밤하늘의 별들이여 그렇게도 목메이게 띄워 올렸던 만세소리여.
쏟아지려무나 우박이라도 새떼라도 좋다 쏟아지려무나.
가거도, 창작과비평사, 1983
조태일 시인 / 겨울 소식
광주를 온몸에 흠뻑 적셔 터벅터벅 그 친구는 서울엘 와서
늘 외롭고 힘 없는 내 손을 쥐고 눈과 손으로 광주를 건네 주지만
내 허전한 마음까지 건네면 쓰나 내 찌든 몸까지 건네면 쓰나
찬 바람 속에서 광주는 큰 애를 뱄다더라.
찬 눈에 덮여서도 무등산은 그렇게도 우람한 만삭이더라.
광주를 온몸에 적셔서 서울의 내 곁에 사알짝 놓아두고
터벅 터벅 서울을 떠나 버리는 친구!
가거도, 창작과비평사, 1983
조태일 시인 / 겨울에 쓴 자유서설(自由序說)
1
우리들의 눈은 허름한 날품팔이의 일거수 일투족에서 이 시대의 눈물을 본다. 우리들의 입은 뚜껑 덮인 청계천처럼 더럽고 컴컴한 야간 완행열차를 바다로 끌고 가 파도 끝에다 함성을 보태고
우리들의 귀는 닫아도 닫아도 거듭 열려서 말 못 하는 침묵을 듣기도 한다.
2
어느 비린내 나는 시장 모서리 포장도 없이 썰렁한 싸구려 음식점에서 이십 원짜리 멀건 수제비 한 사발과 깍두기 두어 점으로 배를 채우고 험란한 팔다리를 끌며 생활을 찾아 일어서는 우리들의 형님과 누나들
웅크리고 있던 겨울 바람도 일어나 윙윙거리며 따라 나선다
3
간(肝)이 콩알만해지는 우리들의 메마른 땅 우리들은 두서없는 말이라도 뿌린다.
기왕에 두서없는 땅 순서가 뒤바뀌어서 뿌리가 하늘로 솟는 땅
솟아서 비나이다 비나이다 우리 하나님께 비나이다
우리들의 머리 위로 내닫는 고압선 고압선 고압선을 우리들 목에 걸어 주시옵소서
발버둥치며 이 땅의 구석구석을 더운 가슴으로 더듬으며 이 겨울을 불 지피며 기어다니리니.
국토, 창작과비평사, 1975
조태일 시인 / 국토서시(國土序詩)
발바닥이 다 닳아 새 살이 돋도록 우리는 우리의 땅을 밟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숨결이 다 타올라 새 숨결이 열리도록 우리는 우리의 하늘 밑을 서성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야윈 팔다리일망정 한껏 휘저어 슬픔도 기쁨도 한껏 가슴으로 맞대며 우리는 우리의 가락 속을 거닐 수밖에 없는 일이다.
버려진 땅에 돋아난 풀잎 하나에서부터 조용히 발버둥치는 돌멩이 하나에까지 이름도 없이 빈 벌판 빈 하늘에 뿌려진 저 혼에까지 저 숨결에까지 닿도록
우리는 우리의 삶을 불지필 일이다. 우리는 우리의 숨결을 보탤 일이다.
일렁이는 피와 다 닳아진 살결과 허연 뼈까지를 통째로 보탤 일이다.
국토, 창작과비평사,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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