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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밝은 시인 / 술의 미학
가끔 심장이 시큰둥해지는 날
곱게 부순 달빛가루에 달콤한 유혹의 혀를 잘 섞은 목신 판의 술잔을 받는다
찰나의 눈빛에 취해 비밀의 말들을 너무 많이 마셨나 날을 세운 은빛 시선이 애꿎은 꽃잎만 잘라내고 있다
물구나무서던 시간들이 절룩거리는 기억을 붙잡고 일어서고 살 속에 섞인 위험한 말들 잠들지 못해 서로 흔들리고, 깨어지기도 하면
옆구리를 내어주며 쨍쨍 부딪치던 건배의 얼굴이 늑골 어딘가에 콕콕 박혀 가쁜 숨을 몰아쉰다
끝내 토해내지 못해 상처 난 이름으로 가슴 울렁거리고
손가락만 흔들어도 열꽃처럼 번져가는 뜨거운 노래들로 바람 속 영혼들처럼 마음 흩날리는 날*
사랑이 사랑으로도 치유되지 않아 벌거벗은 혀들이
술잔 속에서 팔딱거리고 있다
*인디언 달력에서 1월을 뜻하는 말중 '바람 속 영혼들처럼 눈이 흩날리는 달'에서 따옴
김밝은 시인 / 보리밭
몹쓸 놈의 치정의 욕망이 소금기 댓말 품은 푸른 섬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
머리칼을 휘날리며 섬의 몸뚱어리가 사납게 흔들렸다
짜릿한 이름이 되고 싶은 갈비뼈쯤에서의 비명이 이승의 하늘을 가르고
뜨겁게 달아오른 몸 환장하게 술렁이는 속살이 타고 있었다
얼척없이 허공으로 흩어지는 장다리꽃잎 어지러운 사이 뭍으로 머리 기울인 기억을 지키려는 그림자 하나 성큼 걸어와 슬픈 풍경도 되어주는,
이 징하게 능글맞은 푸른 섬의 등지느러미 위에서 아랫입술 말랑한 낮달의 얼굴 붉어지면
훔쳐보던 4월의 지랄 같은 음모 출렁, 거센 파도를 넘는다
김밝은 시인 / 핸드폰에서 살다가
그대를 찾을 수가 없다
미궁의 언덕을 넘어가던 연기마저 숨죽이는, 후박나무 생각 깊어진 봄날
수많은 골목들을 찾아 헤매도 이름마저 행방불명되어 버렸다
열한 개의 숫자로 새겨진 얼굴 초록 잎들마저 침묵하던 오월 어느 하루 그대가 생의 나침반을 떨어트렸을 때 함께 사라져버린 것일까
가끔 나의 새벽으로 눈물 같은 미소를 거느리고 찾아와 몇 가지 표정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잊어버린 비밀번호처럼 떠오르지 않는다
한잔의 카라멜마끼아또 같던 그대, 가벼운 몸짓으로 이승의 어느 길목을 빠져나갔는지 호젓한 숲길 사이 박새 드나드는 소리
오늘은 조각나버린 기억 저 너머 가릉빈가 날갯짓하는 구릉 위를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2013년 《미네르바》 등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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