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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수옥 시인 / 고문(拷問)
참꼬막을 삶는다 펄펄 끓는 물 속으로 입을 앙다물고 몸을 갑옷으로 무장한 그들을 쳐넣는다 입 벌려! 뜨거운 맛을 봐야 알겠어? 다문 입에서 허옇게 거품을 물고 그가 쩍 입을 벌린다 입 속에는 아무것도 없다 텅 빈 속에 겨우 쬐끄만 목젖 하나 달고 있다 네 뱃속에 납덩이가 들어 있다고? 꿀꺽한 수천억 원이, 쬐끄만 목젖이 진주가 되고 있다고?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는다 눈물 흘리며 반성문 쓴 놈 시간이 지날수록 누런 혐의들을 내뱉는 놈들 그런데 주둥이에 주름 잡히도록 입을 꽉 붙이고 있는 놈이 있다 폭탄선언을 하면 여럿 다친다고 참을수 없는 애국정신에 입각해서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고...... 아무리 불꽃을 돋우워도 놈은 꿈적도 않는다 찬물에 옮겨 달래보아도 소용이 없다 독한 것! 나는 고집스런 주둥이에 예리한 칼끝을 찔러 넣는다 순간, 놈은 퉤 하고 얼굴에 뻘물을 내뱉는다 억지로 받아 낸 자백은 온통 썩은 뻘물뿐이었다.
채수옥 시인 / 그 호두나무에는 수천 개의 방들이 있습니다
밤이 되면 긴 그림자를 끌고 달빛 속을 서성이는 방들이 있습니다 열에 들뜬 창문으로 드나드는 바람을 가진 방들이 있습니다 잘랑거리며 문고리가 흔들립니다 방 하나 열어봅니다 푸른 뼈를 가지런히 눕히고 아이들이 자고 있습니다 꿈꾸는 아이들이 야호! 자전거를 타고 꽃잎 속을 달립니다 꽃밥을 지나고, 암술을 지나 씨방까지 달립니다
달빛이 쉴 새 없이 그 방을 들락거립니다 풀 냄새 나는 말랑한 아이들의 살 위에 시간이 쌓입니다 가령 상처 같은 것입니다 툭툭 터지는 푸른 방 같은 것입니다
이윽고 어둠을 향해 딱 벌어진 알몸의 아이들은 결국 허공을 붙잡고 일어설 것입니다 어두운 몸 안을 구불구불 기어 상형문자 같은 길 따라 아이들이 굴러내릴 겁니다 아아, 그때 나뭇가지마다 새순 돋은 잎들이 팔랑거리겠지요
채수옥 시인 / 영종도에서
바람이 바다에 닿을 때마다 수만 마리의 푸른 용이 꿈틀거린다 크고 물컹한 것들이 어떤 갈비뼈 사이를 타고 넘는다 바다에 푸른 불이 켜진다 누가 저 바다의 내장에 또아리를 틀었는가 누가 이제 곧 승천하는가 문득, 내 몸이 허공에 걸린다 절벽이 발 아래로 보인다 흰 옷 입은 여자 하나가 바위 밑에서 한생 촛불 켜고 기도하고 있다
나는 비를 품고 있는 구름 뒤로 간다 거기, 죽은 아버지가 비를 맞고 서 있다 작업복에서 흘러내린 황톳물이 소나기가 되어 쏟아지고 있다 -물줄기를 만나려면 한 구뎅이를 파, 평생 남의 집 우물만 파시다 돌아가신 아버지 미끌거리는 푸른 소리 한 마리가 내 몸을 쑥 빠져나갔다
2002년 《실천문학》봄호 등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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