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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자 시인 / 골목의 기억
어지럽던 어제의 골목들이 하나 둘 먼 길 사라져버리고
미련 때문에 남아있던 구불구불한 좁은 길들은 쭉쭉 펴지고 있었다
텅 빈 자리마다 환하게 전등불빛이 사각형으로 밝혔다 사각형 마을은 각각의 네모 안에서 조그맣게 중얼거리곤 했다
떠나간 골목의 설렘을 기억하지 못했다 어제의 골목은 심장을 하나씩 가지고 제 노래를 부르곤 했다
달빛이 서성거리던 골목길 구름이 낮게 드리워 옷자락을 끌던 모퉁이 키 큰 감나무도 흔적 없이 골목 따라 제 모습을 감추어버렸다
골목이 키우던 개들도 골목을 품고 푸성귀를 키우던 텃밭도 텃밭을 바다처럼 헤엄치던 잠자리도 햇살을 낚시질하던 거미도 골목이 데리고 떠나버렸다
사각형의 환한 거리에서 남아있는 골목들은 고향의 흔적을 잃어버리고 허전함과 외로움이 환한 거리만큼 비대해지고 거칠어져갔다
이제 기억을 잃은 골목이 쭉쭉 펴진 길 위로 가로등 불빛을 타고 휘청휘청 메마르게 걸어간다
계간 『시산맥』 2019년 겨울호 발표
권순자 시인 / 건널목
시장 앞 큰길 건널목 저녁햇살 받으며 세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간다 절뚝거리는 무릎에 얼마나 긴 시간이 매달리고 휘감으며 흘렀을까 햇살이 감긴다 속도를 자랑하는 자동차들 정지선에 웅크리고 있다 야생마처럼 빛나는 얼굴도 잠시 시간을 겸허히 수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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