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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밝은 시인 / 플레어스커트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2.

김밝은 시인 / 플레어스커트

 

 

하늘의 중추를 돌리던 봄의 손사위가 지쳐갈 때

기침 소리만 받아내던 플레어스커트에

수국꽃빛으로 물든 바다가 휘모리장단으로 흔들렸다

 

치맛자락 어디쯤에서 우화한 나비가

푸른 절벽 위에서 날아가 버린 날

북두칠성의 허리를 붙잡고 있던

외옹치(外瓮峙)의 바닷물 흘러들었던 것일까

 

펄럭이다가 휘날리다가, 애면글면한 상처들을 붙잡고

파도치는 치마 위에 얼굴을 묻으면

 

죽음 앞에서처럼 순해져야 하거나

온몸을 바동거려야 할 때라고

내려놓아야 할 무엇 아프냐고,

 

낯익은 인기척 같은 저릿한 눈물이

눈물을 짊어지고 북두칠성을 향해 부풀어 오르는 저녁

 

머뭇머뭇하던 꽃잎들이 팽팽해진 울음으로 출렁였다

 

바다의 눈동자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시집 『술의 미학』(미네르바, 2017) 중에서

 

 


 

 

김밝은 시인 / 연어 이야기

 

 

살아있는 것들의 몸을 함부로 만지지 못했던 적 있었습니다 아무데나 앉아 징징거리기도 하고 땅따먹기를 하다가 친구의 머리카락을 한 움큼 뽑아내버리기도 했었지만요

 

분홍분홍하며 피어나던 진달래나 붉디붉어진 저녁 해를 껴입고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멀리 있는 엄마 생각에 눈물을 찔끔거리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토방 밑으로 흰 뱀이 들어가는 걸 본 뒤였을 거예요 작대기 하나를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빨랫줄에 새 한 마리가 날마다 찾아와 울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새끼가 잘못 태어나 아프다며 눈감은 네 애비가 찾아와 깃에 묻혀온 미안한 시간을 털어내는 거라고, 할머니는 바다냄새 찐득한 노랫가락을 굽이굽이 뽑아내곤 하셨지요

 

사다리를 몇 개쯤이나 이으면 하늘에 닿을 수 있을까 아무리 궁리를 해봐도 바다를 품은 수국이 그늘진 계절만을 데리고 오던 작은 마당도, 할머니의 고단한 옷고름을 풀어주던 육자배기도 다만 아득한 풍경으로 남아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희고 긴 손가락을 꿈꾸었던 나의 화양연화였다니요

 

허공을 만지작거리던 눈으로 붉어진 하늘이 와르르 쏟아져 내립니다

 

시집 『술의 미학』(미네르바, 2017) 중에서

 


 

김밝은 시인

전남 해남에서 출생. 한국방송대학교 교육학과 졸업. 2013년 《미네르바》를 통해 등단. 시집으로 『술의 미학』(미네르바, 2017)이 있음. 시예술아카데미상 수상. 현재 <한국문인협회> 편집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