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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시인 / 독서
나는 가끔 소리 내 책을 읽는다. 그러다 갑자기 울컥 해서 목이 멜 때가 있다. 무슨 슬픈 장면이어서가 아니다.
고등학교 시절 방에 누워 책을 소리 내 읽고 있는데 뒤에 앉아 바느질을 하고 계시던 어머니가 어느 대목에선가 쯧쯧 딱하지, 하고 혀를 차셨다.
그 소리가 책 읽고 있는 내 귓전에 울리곤 해서다. 돌아봐도 어머니가 뒤에 앉아 계시지 않다는 걸 내 몸이 어김없이 알아서다
박덕규 시인 / 등이 아픈 사랑
배가 아프면 움켜쥔다. 마음이 아프면 가슴에 두 손을 모은다.
갑자기 코피가 쏟아지면 무식하게 장갑 낀 주먹으로 문댈 수도 있다.
등이 아프면 등이 아프면 거북처럼 바닥에 발랑 뒤집어져 허연 배 다 드러내고 버둥거려도
아픈 등은 아픈 데는 안 아파지지 않는다.
2019년 10월 7일(월) 중부일보
박덕규 시인 / 몽롱한 청춘
몽롱 몽롱 몽롱
몽롱한 의식 구조를 가진 아이가 몽롱한 섬유 조직을 가진 안개 속을 헤쳐 나간다 몽롱한 안개 조직을 가진 꿈들이
몽롱한 장래 희망을 가진 세월 속을 걸어간다 몽롱한 부속 기관을 가진 자동차 몽롱한 발성 기관을 가진 새
몽롱한 비행 공간을 가진 새들이 머뭇거린다 몽롱한 낙하 공간을 가진 빗방울들이 주춤거린다
몽롱 몽롱
몽롱한 지역 감정을 가진 안개들의 대립 몽롱한 순환 논리를 가지 혹성들의 인력 몽롱한 결합 체계를 가진 원자들의 운동
몽롱한 시대 구분을 가진 역사 몽롱한 항의 목적을 가진 아이들의 몽롱한 용감 무쌍을 가진
몽롱한 달밤 풍경을 가진 서울들의 몽롱한 지성 감성을 가진 아이
몽롱한 몽롱한 안개 조직을 가진 몽롱한 몽롱한
몽롱한 유전 인자를 가진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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