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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시인 / 무의미
못 알아 들으시겠다구요?
말을 삼킨 입
바람 불고 눈발 날린 건데요.
당신의 굳은 얼굴 때문인걸요
박덕규 시인 / 미궁
그 일이 일어났다 그는 동네의 거물이었다 그는 육교 계단을 오르다 쓰러졌다 그 일은 미궁에 빠지고 있었다
그를 호위하던 후배들은 근처 소리사의 갑작스런 음악 소리에 고개를 돌린 순간이었다고 했다 소리사 주인은 정체 불명의 한 손님이 볼륨을 좀 더 높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볼륨을 다시 줄일 때 손님과 더불어 육교 아래 쓰러져 있는 그를 볼 수 있었다고 했다
문방구 주인은 아이들이 신종 볼펜을 달라는 아우성 때문에 오락실 주인은 요란한 전자 곤충 전쟁 때문에 각각 앰뷸런스가 온 다음에야 그 일을 알았다고 했다 자전거상 주인은 낮잠을 자다가 도둑이 든 줄 알고 벌떡 일어났다고 했다
많은 목격자들은 어떤 사내 둘이 그를 밀치고는 시내 버스를 뛰어 올랐다고 했다 그런데 두어 행인은 호위 후배들이 그를 뒤로 당겨 쓰러뜨린 다음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격분했다 한 행인은 그가 발을 헛디뎠으며 그 무렵 돌 하나가 그를 향해 날아 가고 있었으나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고 진술했다
그는 시립 병원으로 옮겨진 후 말도 못하고 마지막 순간 손가락으로 동그라미 하나를 허공에 그리다가 숨졌다 추리 소설 독자 협회에 가입했던 한 소년이 그것은 여자를 상징하는 기호일 수도 있고 사랑 마크의 오기일 수도 있다고 해 연정에 얽힌 죽음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남발했다
뇌진탕이라고 레지던트들은 입을 모았으나 누구에게 떠밀렸던 흔적은 없고 단지 입원 직후 양복 저고리 윗단추가 떨어질 듯 달려 있었다고 했으며 그의 치아를 담당해온 치과 대학 본과 1년생 과대표는 충치의 아픔 때문에 난간을 잡았던 손을 놓았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 행인이 흥분했다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을종 여관에 투숙중인 운명 철학자는 말했다 그는 생체 리듬 사이클의 하강 기간이었던 듯해요 한 동네 유지가 말했다 그는 뛰어난 순수 민간 거물이었지요 동네 막강한 실권자가 말했다 내가 그에게 그 육교를 오르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던가 유가족들은 말했다 동네를 위하시다 가셨어요 골목 치안 담당은 말했다 당시 치안은 완벽했으나 책임을 지고 물러나겠다 골목 검찰 담당은 말했다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겠다 구내 방송은 말했다 검찰측에서 제 3의 목격자를 숨기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르포 작가 지망생은 말했다 이 일은 지난번 지하도 사건에 이은 제2의 의혹 사건이다
그 일은 미궁에 빠졌다 미궁은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한까지 미궁이었다
미침내 한 지식인이 그 일의 전모를 밝혀냈을 때 그 일은 사람들의 관심 밖이었다 아무 출판사도 그 진실을 제작하지 않았다 그 진실은 이 시의 주제와도 상관 없으므로 더 이상 언급을 회피하겠다 이번에는
공중에서 또 하나의 일이 발생했다 뒷마을 거물의 사고였다 그 일은 미궁에 빠지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궁 안팎으로 몰려들었다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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