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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최형심 시인 / 위험한 퍼포먼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8.

최형심 시인 / 위험한 퍼포먼스

 

 

  전동차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사내, 씨발 씨발 책장을 북북 찢었다. 광고모델의 웃음이 반으로 죽 찢어졌다. 겁에 질린 검은 글자들이 우르르 바닥으로 쏟아졌다.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야, 인간쓰레기들아! 한방이면 끝나! 좌석에 앉은 눈들이 일제히 그에게 박혔다. 사내는 페트병을 꺼내 콸콸 쏟았다. 바닥에 엎어진 분노가 사람들 발목에 질퍽했다. 신나 냄새에 눈이 매웠다. 반짝, 그의 손에서 라이터 불이 켜졌다. 전통차가 덜컥! 순간, 일제히 일어났다. 신나가 묻은 신발들이 우르르 단숨에 다음 칸으로 뛰었다. 넘어진 여자를 밟고 한 사내가 뛰었다. 핸드백을 밟고 구둣발이 지나갔다.     

 

  2분, 양재역까지는 멀다. 겁에 질린 울음들이 유리창을 두드렸다. 무표정한 사내가 뚜벅뚜벅 다가왔다. 문은 닫혀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발표

 

 


 

 

최형심 시인 / 나무에는 새가 열린다

 

 

공원 소나무는 비둘기를 낳고

도심 사철나무는 짹짹 참새들의 수다를 낳는다

늙은 느티나무에 봄마다 제비새끼들이 영글고  

한때 미루나무도 넘치도록 까치를 경작했다

 

배고픈 하늘이

가지에 열린 새들을 다 따먹어도

나무는 날마다 새들을 빚어 매단다

하늘을 먹여 살리는 나무들

 

남쪽 하늘이 철새들을 다 수확해가고

가을이 홀로 수척해지면

뒷산을 오르던 잘 익은 햇덩이,

빈 가지가 새대신 매달다가 놓쳤다

산등성이에 터져버린 해

해거름 산의 머리가 붉다

가지 끝에서 박새울음이

막 움트고 있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발표

 

 


 

최형심 시인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박사과정 수료. 2008년 《현대시》를 통해 등단. 현재 '젊은 시인들' 동인으로 활동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