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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현 시인 / 순록이 있는 초원
흰 용담꽃 핀 산 너머, 아홉 살 소녀에게 사탕을 전하러 가는 열한 살 소년, 초원 사람들을 영원으로 안내한다는 흰뿔순록의 황금빛 구리방울소리가 차고 맑은 공기를 잘랑잘랑 가른다. 전생의 연인을 찾아가는 산자락 오솔길은 연푸르고 조용하다. 먼 길을 걸어 오르츠 천막 찾아 온 순례자 앞에 누군가 갖다 놓은 분홍 술패랭이꽃 한 다발, 볼 붉은 소년은 타고 온 순록의 귀에 살며시 꽃 한송이 꽂아준다. 들꽃의 향기에 잠시 취한 듯 새하얀 뭉게구름 서늘히 그림자 드리워 주는 고산지대 호숫가. 전생이 수도사였던 어린 소년은 천년고목의 텅 빈 듯한 목소리로 바람의 음률을 불러들인다. 오래된 어린 연인을 바라보며 호젓하게 풀어내는 긴 노랫가락, 하늘과 땅을 둥글게 돌아 소녀의 검은 눈동자 속으로 스며든다. 순록이 인도하는 영원함은 어린 연인의 맞잡은 손끝으로 또 다시 이어지고 술패랭이 분홍꽃잎은 흰구름의 등 위로 오르고 있다. 우리 모두는 영원을 향해 걷는 순례자였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2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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