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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채수옥 시인 / 높이 날아가는 비상구를 위해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8.

채수옥 시인 / 높이 날아가는 비상구를 위해

 

 

계단 아래 그 나무는

낯선 생각들의 내부를 갖고 있다

 

검은 참나무 잎이 교활하게 흔들릴 때마다

광장은 저질스러워지고

 

어서와 손을 잡아줄래

 

계단들은 창백한 오후를 한 칸 씩 늘려가고

너의 태도는 염소처럼 일관성이 없었다

 

쓸모없어진 구호와 파손 된 웃음들이

시든 화분 속에서 중얼거리고

 

국기는 일주일을 기다려 토요일에 본격적으로 물결을 이룬다

토할 것 같은 멀미를 일으키며

 

뜨거워지는 운명들

 

얼굴들에 돋아 난 신념들은 새를 부풀리고 확장시킨다

높이 날아가는 비상구를 위해

 

후렴구 같은 햇빛을 내부로 구겨 넣는,

계단 아래

광장을 열면

 

열병처럼 들끓는 불치병의 만국기와

귓속을 흘러넘치는 코끼리들

 

토끼 굴에 빠진 토요일의 광장은

쉽게 뭉쳐지고, 흩어지며

깊어지고 있었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2월호 발표

 

 


 

채수옥 시인

1965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 2002년 《실천문학》으로 등단.  시집으로 『비대칭의 오후』,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