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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덕규 시인 / 바캉스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9.

박덕규 시인 / 바캉스

 

 

방학이 되자 바다로 가겠다는 애인을

배낭 속에 처넣고 산으로 오른다 야호오호오―

누군가의 메아리가 달려 와 내 가슴 벽에 부딪쳤다

되돌아간다, 일단 한번 바다로 가 보재니깐요

배낭 속에서 투덜거리는 애인을 묵살하고 산에 산에

 

오른다 애인은 배를 타고 멀리 나가고 싶어한다

배를 세내자면 돈이 많이 들지 않느냐 그래도

애인은 볼멘 소리다, 일단 한번 바다로 가 보재니까……

네 몸매를 자랑하고 싶은 게로구나, 그래도……

니가 무슨 자유와 꿈을 사랑하는 진보주의자라고, 그래도 바다로……

니가 무슨 원형 이론에 불타는 회귀성 시인이라고, 그래도 이

갈구를 무시하실 수야……, 놀고 있네

 

말뚝을 박고 텐트를 칠 때에도 애인은

음질 나쁜 녹음 테이프처럼 찌직거리며 고장난 젖꼭지처럼 졸졸

불만투성이 애인은 바다 바다 바다로……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는 법, 애인의 어깨를 토닥거리며

어헛헛 웃어도 애인은 입술을 깨물고 그 입술

선정적으로 물들 때까지 나는 그윽히 하늘과

구름과 산 사이로 벌레 울음 새 울음 사이로 눈알을 굴리는데

애인의 어깨는 어느새 그 바다 물결 물결 흐느끼어서

 

이 유익한 방학 기간에 신경질이 나서

애인을 배낭 속에 쑤셔 넣고

산을 내려 온다 이젠 휘파람도 메아리도 없는 길

애인은 언제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싶어한다

확 벼랑에 던져 놓는다 위협하여도

애인은 자꾸 멀리멀리 나가고 싶어한다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박덕규 시인 / 봄 햇살

 

 

여린 꽃대궁마다

남쪽 바람 손잡고

봄마실 가던 길목

 

잔뜩 심술난

동장군에게 꼬집혀

잉잉 울고 있을 때

 

눈물 닦아주며

아픈 곳 어루만져주는

할머니의 약손

 

 


 

 

박덕규 시인 / 비둘기와 손

 

 

부질없는 짓이다.

새를 내 손 안에 가두어 두는 일.

마치 기도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으고

새의 안녕을 비는 일.

 

그러나 새는 떠나가지.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면서

창공 가득 날아 오르지.

 

새는 날아도 그 천상의

영역이 있다.

바람의 저항을 지나면 지날수록

아름다운 비상의 행로를 버리게 된다.

새의 가슴이 눈비에 젖어

만리 밖에서 겨울을 맞는다.

어쩌면 구원은 여기에 있을까.

새는 빈 뼈 마디마디

고심에 찬다.

 

부질없는 짓이다.

아득히 끝없이 날아 오른다는 것.

마치 영원으로 가는 것처럼 너훌너훌

그 하염없는 일.

 

때때로 새는

내 손 안에 감추어지기를 희망하였다.

내 손 안 따뜻한 주말 오후에 깃을 내리고

공원 곳곳의 피는 봄을 보아라.

 

내 손 가득 평화 위에 새를 세우고

새와 나의 안녕을 노래부를 때

비로소 새는 자유처럼 떠난다.

 

나는 언제나 새를 부르고

안녕, 하고 손을 흔들며 영원으로

새는 떠나고 이제 손 안에

아득히 끝없이 날아서 온다.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박덕규 시인(소설가)

1958년, 경북 안동시 출생.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경희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단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졸업. 1980년 <시운동>으로 등단. 시집 <아름다운 사냥>, <골목을 나는 나비> 등. 2005 단국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교수. 2014.1 한국문예창작아카데미 회장. 1982 한국문학 신인상 수상. 1982 중앙일보신춘문예 평론부문 입상. 1992 편운문학상 수상. 2001 제14회 경희문학상 소설부문 수상. 2015.5 제30화 이상화시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