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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덕규 시인 / 탄력성
내게 작은 공이 하나 있다 아침에 그 공을 버릇처럼 퉁긴다 공은 내 손과 방바닥 사이를 규모 있게 왕복한다 내가 그 동작을 멈추고 출근하게 될 때에도 공은 여전히 내 손바닥이 있던 높이까지 튀어 오르곤 한다 그 모습을 떠올리며 나는 하루를 보낸다
공은 마치 바위 속을 유영했던 물고기 같은 느낌이 든다 하루 종일 공은 내 몸 안을 굴러 다니다가 한순간 툭 하고 퉁겨져 나와 분주한 거리로 몸 던지기도 한다 그러면 저 움직이는 것들이 모두 공의 튐처럼 보인다 울렁이는 차체나 계단을 오르내리는 발걸음들이 모두 흔들리는 깃발들이 깃발을 흔드는 바람들이 모두
내 근육도 그렇게 튀어 오르게 된다 죔나사 풀림나사처럼 나의 세포들은 분열하고 분열된 것들은 각각 제 몸을 공처럼 오므린다 또 분열한다 이제 비로소 튀지 않는 모든 것은 죽은 것이다 교정지를 들고 출판사와 인쇄소 사이를 오고 가는 발걸음 앞에 무수한 활자들은 튀어 나온다 눈 앞에 톡톡 나보다 앞서 뛰어간다 선전 포스터의 여 모델들도 깔깔 그들이 손에 쥔 청량 음료 껌 깡통 밀감들도 마냥 벽에만 박혀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듯이 모두 모두
저녁에 공은 튄다 밤에도 그 공은 잠을 위한 자장가인 양 귓가에서 통통통 꿈 속을 배회하고 새끼 고래 숨결처럼 공은 아직도 내 몸 안 방바닥 손바닥 사이를 왕복하고 있다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박덕규 시인 / 튐에 대하여
내 경쾌한 공의 운동. 실은 도약을 위해 근육을 모으는 때, 바로 그 순간, 이미 돌아올 것을 예감함. 태어나면서 죽음을 본 끔찍함. 끔찍함! ! !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박덕규 시인 / 하현달
너는 참 이상한 꽃이야.
잠결에 어린 누이가 뜰에 내린 어둠을 쓸고 있다. 발목에 이는 덜 깬 바람이 흐느적거리며 다시 어둠의 일부가 된다. 치마폭에 갇혀서 나의 누이는 밤마다 꽃밭을 가꾸자고 한다. 물안개를 뿜으면 꽃들은 조개처럼 입을 오므린다. 뜰에 가득히 꽃잠을 자다가 나비잠을 자다가 간밤엔 초경으로 가슴 팔딱이던, 오오라
네가 지상에 처음인 그 입술 작은 꽃이로구나.
아름다운 사냥, 문학과지성사,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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