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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여원 시인 / 물푸레 동면기
물푸레나무 찰랑거리듯 비스듬히 서 있다 양손에 실타래를 감고 다시 물소리로 풀고 있다 얼음 언 물에 들어 겨울을 나는 물푸레 생각에 잠긴 척 바위 밑 씨앗들이 졸졸 여물어가는 소리를 듣고 있다 얼룩무늬 수피가 물에 닿으면 물은 파랗게 불을 켰었다 바람은 지나가는 분량이어서 몸 안에 들인 적 없고 팔목을 좌우로 흔들어 멀리 쫓아 보냈었다 손마디가 뭉툭한 나무는 실을 푸느라 팔이 아프다 나무의 생채기에 서표(書標)를 꽂아두고 녹아 흐르는 물소리를 꽂아두고 말린다 푸른 잎들은 물속 돌 밑에 들어 있고 겨울 동안 잎맥이 생길 것이다 추위가 가득 엉켜 있는 물가, 작은 샛길이 마을 쪽으로 얼어 미끄럽다 빈 몸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들 모두 봄이 오는 방향 쪽으로 비스듬 마중을 나가 있다 날짜를 세는 가지는 문맹(文盲)이다 개울이 키우고 있는 것이 물푸레인지 물푸레가 키우고 있는 것이 개울인지 알 수 없지만 나뭇잎 하나 얼음 위로 소금쟁이처럼 떠 있다
2012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시
이여원 시인 / 종소리와 가시
손끝에 가시가 박히고 가리키는 곳마다 아프게 하기를.
넝쿨모양으로 서로가 서로에게 엉켜서 우리는 열 개의 가시를 꼭 움켜쥐고 불화한 시간들을 나열하며 하나의 가시를 뺄 때마다 손끝에선 원수진 사람의 혈액형으로 피가 흘렀다.
기다리다 지치면 산이 바다가 되는 오류가 발생하기도 한다.
봄이 되면 가시들도 물이 올라 통통해지고 온순해진다.
가시들이 책 속의 이야기처럼 느껴질 때 깨진 창문에서 빛이 꽃처럼 떨어졌다. 어떤 질문을 섞었는지 너는 알고 나는 모른 척 할 것이다.
상처 난 사건들의 흉터를 매만진다. 그리고 홍수처럼 떠내려가기도 하고 나무 꼭대기 위에서 까치가 크게 웃는 날도 있었다. 무서운 것은 무심해지는 것. 가시를 꽃으로 키우면 되는 것이다.
손가락질을 받고서라도 가끔은 가시처럼 살고 싶을 때
아무도 건들이지 못하는 가시덤불처럼 가을의 독 오른 가시처럼 살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날마다 가시가 종소리처럼 피어난다.
울산 『매일신문』 2019년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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