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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신달자 시인 / 늙은 밭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4.

신달자 시인 / 늙은 밭

 

 

늙은 밭에도 잡풀은 자란다

절반은 자갈이 들어 박혀 수명 다해가는 거친 밭에도

돌 사이를 비집고 잡풀이 자란다

 

이렇게 천둥이 치고 치는 밤

늙은 여자의 밭에도 이름도 없는 바다의 해일이 쳐 들어 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잡풀이 온 몸을 덮어

회초리로 쳐도 죽지 않는 잡풀이 살 속을 흔들어

다만 누워 고요라도 암벽 타듯 끌어안아 라 한다

 

어쩌다가는 눈에 익은 배롱나무 한그루

무슨 인연으로 천둥 낙뢰를 혼자 맞으며

방에서 새어 나간 마음 한줄기

밤새 누가 울었는지 모르게 소나기 없었던 마당이 젖어 있다

 

다만 누워 어둠을 꼬아 사슬처럼 온 몸에 두르니

누군가 이리떼처럼 운다 바스라지듯 운다

얼마나 단단한 심장인가 하늘이 내려와 땅을 덥고 땅이 솟구쳐 하늘을 껴안는

 

늙은 밭에는 홀로 울음을 달래는

산 그림자가 산다.

 

격월간 『시와 표현』 2019년 3~4월호 발표

 

 


 

신달자 시인

경남 거창에서 출생. 숙명여자대학교 국문학과 및 同 대학원 졸업. 문학박사. 1972년 《현대문학》을 통해 박목월의 추천으로 등단. 시집으로『겨울축제』, 『모순의 방』, 『시간과의 동행』, 『아버지의 빛』 등과  장편소설 『물 위를 걷는 여자』 외에 산문집『여자는 나이와 함께 아름다워진다』등이 있음. 1964년 여성 신인여류문학상, 1989년 대한민국문학상, 2001년 시와 시학상, 2004년 시인협회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