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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길상호 시인 / 쪽방의 여름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6.

길상호 시인 / 쪽방의 여름

 

 

  창문 없는 집에 산다지요, 바람 한점 기웃대지 못하는 방 선풍기는 제 목을 비틀며 돌아가고 뜨거운 바람에 쪼글쪼글 덧없는 시간 말리면서 하루하루 버틴다지요, 슬레이트 골마다 녹아 흐르는 불볕에 데지 않으려면 가슴 불부터 다스려야 한다고 무겁고 서늘한 한숨 속마음 지그시 눌러놓지요, 죄 없어도 돈이 없으면 떨어지게 되는 팔열지옥(八熱地獄), 그래도 한 쪽 남은 거처인데 언제 사라질지 모른다고 얼굴 눈물자국 따라 선명한 균열

 

 당신들은 지금 평등한 온도 속에 산다고 생각하세요?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길상호 시인 / 새빨간 거짓말

 

 

  보험 해약 환급금 몇 푼으로 사온 오천 원짜리 수박 한 통 (꿀처럼 단 꿀수박) 당신들 소중한 가족으로 남기에는 턱없이 가파른 생활, 기어오르던 생각의 넝쿨 끊어내고 건네받은 수박 한 통 (설탕보다 단 설탕수박) 줄무늬도 선명하고 통통통 소리도 경쾌한 게 칼이 닿기도 전에 쪼개질 걸요 묵직한 게 가벼운 지갑 잠시 눌러주던 수박, 다시 한번 팔 힘줄 불끈 서게 하던 수박, 그런데 허허, 칼이 들어가지 않는다, 빨갛게 잘 익었을 거라는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당신들의 울타리에서 쫓겨나 머리통만 두드리게 되는 저녁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길상호 시인

1973년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1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그 노인이 지은 집』이 당선되어 등단, 2004년 '현대시동인상'을 수상했다. 시집으로 『오동나무 안에 잠들다』 (문학세계사, 2004)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