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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곽은영 시인 / Galaxy Express 999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6.

곽은영 시인 / Galaxy Express 999

 

 

  한 뼘을 활짝 펼쳐 북쪽의 은하맵에 반원을 그리자

  창을 열고 손을 내밀어 봐 다시 사랑스러운 밤이 찾아왔으니

 

  느긋한 바람이 실어오는 태양과 흙과 붉은 벽돌의 뜨거움

  그런 것들을 꿈꾸기도 하지만,

 

  지금은 별들의 아가미가 반짝거리는 시간

  촉촉한 것들이 아름다운 시간

 

  나는 어느 순간 슬픔의 무한궤도를 달리는 Galaxy Express 999을 탔다

 

  싱그러운 스윙을 따라 3노트로 흐르는 별들의 플로어위에서

  우리들은 환호를 날리며 소다수를 터트리며 미끄러진다

  제각각의 이유 들쭉날쭉 시간을 가진 손과 뺨에 키스를,

  톡톡 혀끝에서 번지는 감정을 수줍은 별에게 수줍게,

 

  Galaxy Express 999 : 탑승객은 누구나 우윳빛 젤리덩어리로 변신한다

 

  내게 건네진 소다수잔을 받아들며 우리는 모두 젤리 피쉬,

  그러자 운을 맞춘 밤이여 영원하라는 답인사 달콤하기도 하지

 

  우리는 조금 가볍게 어깨를 들썩인다

  나른한 쌉쌀함에 살짝 취한 채

  종착별의 태양과 맨살의 묵직함을 다시 입을 때까지

  그리고 우리는 침묵한다

 

  별들은 3노트의 속도로 흐르고

  밤에서 밤으로 건너가는 Galaxy Express 999

 

  슬픔은 그 자체로 고유한 질량을 갖기에 이곳의 우리는 동등하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발표

 

 


 

 

곽은영 시인 / 나의 달은 매일 운다

 

 

  일년 내내 비가 내리는 땅

  귀를 씻고 이곳에 왔어요 구두를 벗고 맨발로 왔어요

  낯선 언어들이 음악처럼 들리는 곳

 

  당신들은 왜 나를 잡으려고 했을까요

  이해하고 싶어라는 징그러운 거짓말의 덩굴

  가위로 덩굴을 자르는 대신 쥐며느리처럼 몸을 말고 빠져나왔죠

 

  당신들의 입맛대로 내 이름은 노랗다가 파랗다가

  한 번도 진짜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도

  거울 속 나는 그때그때 달라서 말하기 곤란했을 뿐인데

 

  우리들은 모두 번쩍번쩍한 태양을 머리통에 박고 살지요

  죽은 엄마는 달의 감정을 내 가슴에 달아주고 떠났어요 여느 엄마처럼

  나는 달의 눈물을 말하고 싶었으나

  태양의 빛이 너무 강렬하기에

 

  일년 내내 비가 내리는 이 곳 빗소리가 아름다워요

  푸른 앵무새는 고맙게도 매일 축축한 흙냄새를 물어와요

  나의 달은 매일 울어요

 

  비밀은 없죠

  이 곳의 언어가 하나 둘 글자로 굳어지자 오해도 큼지막하게 쌓여

  대문을 틀어막았네요 이제 나는 눈물이 되어 흘러나갈까요

  가슴의 달은 둥둥 떠서 언제까지고 흐르겠죠

 

  갈래머리를 땋았다가 올렸다가 거울에게 물어봐요

  나의 몸은 납작하지만 등 뒤는 깊고 깊은 세계

  그리고 울고 있는 나의 달

  울고 있는 나의 달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발표

 

 


 

곽은영 시인

1975년 광주에서 출생. 1997년 전남대와 2001년 서울예술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개기월식〉이 당선되어 등단. 시집으로 『검은 고양이 흰 개』(랜덤하우스코리아, 2008)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