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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정 시인 / 악어
악어를 빌려 말하자면 이 암컷은 차가운 날씨 때문에 지금 여기 도착하게 된 것이다. 대형할인매장 주차장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양손에 들고 불쑥 나타난 여자는 몇 개의 층을 지나 한참 동안 걸어 나왔다. 해변의 모래무덤 속에서 우연은 망설임 한번 없이 태어나고 다만 어떤 생은 온도가 중요하다는 것, 예기치 않은 파도 때문에 없던 돌기가 돋아날 수도 있다는 것, '이 별을 낳은 자들이 저 별로 사라지듯' 한때 악어였고 오랫동안 악어일 그 여자는 하필 오늘 비가 왔으므로 빈 알껍데기 같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입구이자 출구로 걸어 나왔다. 그리고 빗길에 미끄러진 네 개의 바퀴를 만난 것이다.
모든 악어는 사고처럼 태어난다. 그리고 훅, 밀려왔지만 너무나 천천히 흩어지는 담배연기처럼 사라진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발표
조혜정 시인 / 가위놀이
한 아이를 만들자 열 아이가 되었어요 열 아이를 펼치자 강강술래, 손에 손을 잡아요
가위엄마는 이렇게 많은 아이들을 허공에 낳아놓고 날카로운 가랑이를 자꾸 벌렸다 닫아요
그림자를 만들어줄게 가위엄마는 햇빛을 오려내어 벼랑을 만들어요 아이들을 벼랑 끝에 풀어놓아요
열 개의 입과 스무 개의 귀가 달리기해요 스무 개의 물음표가 열 개의 물음표에 매달려요 데굴데굴 바닥으로 굴러 떨어져요 저녁이 되어도 목소리 없는 노래가 끝나지 않아요
가위엄마는 대답을 세다 잠이 들어요 바람이 손목을 긋고 지나가도 깨지 않아요 어둠이 눈코입을 막아도 깨지 않아요
열 아이를 펼치자 강강술래, 아이들은 다시 아이로 돌아가지 못해요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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