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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이종섶 시인 / 립서비스센터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17.

이종섶 시인 / 립서비스센터

 

 

  욕구불만이신가요? 립서비스 한번 받아보세요 만족이 없는 당신을 위해

  세련된 입을 오픈했어요

 

  오, 너무 저급하다고 생각하진 마세요

  어항 속의 금붕어나 침대 위의 귀여운 애견에게 입이 없는 것을 상상하기란 정말 끔찍한 일이니까요

 

  발을 사용하는 짐승들이 많아도 모든 것을 입으로 해결하는 것을 보면

  립서비스 천국이 가까이 왔다는 말이 틀림없어요

 

  인간은 그 맛을 자주 착각하는 게 흠이지만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왕성한 시연회 덕분에 립서비스 없인 살 수 없는 동물로 변하게 되었거든요

 

  ‘아양과 수다를 그대 품안에’

  우리 회사의 새로운 표어가 마음에 드세요?

  고객들은 질 좋은 서비스를 받고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갈 권리가 있어요

 

  입으로도 배설한다는 학설을 주창한 구강전문의 때문에

  항문의 기능이 퇴화하는 대신 입의 역할과 효과가 새롭게 부각되었다고 하네요

  사실은 립서비스가 발달한 덕분인데도 말이죠

 

  인간은 장차 머리만 남게 된다고도 하지만 그것은 본능이 거세된 학자의 말일뿐 결국엔

  입과 귀만 남는다는 정설이 받아들여지지 않겠어요?

 

  커다란 구멍들을 동시에 만족시켜주는

  최상의 생활이 당신 앞에 펼쳐지고 있어요, 신경쇠약이나 대인기피증이 느껴지신다면 망설이지 말고 오세요

 

  첨단과학이 지배하는 미래에도 최고의 유망직종으로 각광받는 립서비스는

  입 하나면 안되는 게 없고 언제든 공짜니까요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이종섶 시인 / 天요일

 

 

  세상에는 있으나 달력에는 없는 無요일을 지나

  有요일이 오면 희미하게 보이다가 사라지는 마른 뼈들의 행렬

  지상의 건조한 요일에 갇혀버린 철지난 그리움이 식어갈 때

  배고픈 위장 속에 숨겨두었던 날들을 차례로 꺼내

  그 비린 속살을 남김없이 쪽쪽 빨아 마실 수만 있다면

  껍데기만 남은 요일들이 서로 싸우다가 쓰러지는 소리를

  잠결에 어렴풋이 듣지 않아도 된다

  귀가 없어도 들을 수 있는 아득한 음성은 멀어져가고

  숫자가 되어서만 남아있게 될 땅위의 흔적들은

  이미 죽어버린 자들의 빈 무덤 하나 제대로 채워주기에도 모자라

  뼈아픈 눈물의 힘줄을 씹으며 자멸하는 저녁을 맞이한다

  회상의 저편에 암각 되어있는 즐거웠던 노래들이

  소용돌이를 일으키던 끝에 돌풍으로 변할 때가 오면

  1요일 이전과 7요일 이후에는 있었으나

  1요일과 7요일 사이에는 잘 보이지 않았던 그날

  바람의 가시와 물의 송곳니와 불의 발톱이 빠지오며

  나의 바람과 물과 불도 한꺼번에 사라지오니

  마른 뼈에 살이 올라 따뜻한 그리움을 마음껏 먹게 될 上요일

  세상에는 없으나 천력(天曆)에는 살아있는

  위에서 아래로만 불어오는 바람의 나라가 온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가을호

 

 


 

이종섶 시인

1964년 경남 하동에서 출생했다.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작곡과를 졸업하였으며 200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 시부문에 당선되어 등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