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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예영 시인 / 지구의 회전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적도 부근에서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머지는 이렇게 또 한 발을 내딛는 것이다. 밤과 낮을 가로 질러 0과 1을 가로 질러 그리고 또 누군가는 빛나는 계단을 머리에 이고 저 아래로.
산을 하나 끌어와야겠어 오벨리스크보다 높고 뾰족한 뿔을 그 안에 우물을 하나 눕혀야지 세계의 반대편으로 통하는 구멍을 나는 좁은 수로를 따라 흐르는 물 창문이 없는 방안에서 기적 소리를 들었지 가슴을 뚫고 지나가는 화차 나는 종종 낡은 수도관을 흐르는 물이라고 생각해 색깔도 없고 냄새도 없는 물 그러나 이곳은 적멸의 방 갈빗대를 울리는 딩-동-당- 소릴 들어보았니? 검은 탄을 싣고 달리는 기차와 거기에 불을 던지는 아이들 검댕칠을 하고 두 눈을 반짝이는 아이들 물은 왜 흘러야 살까? 비린내와 그림자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지 내 묘비명은 검은 산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사람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또 다시 다른 쪽 발을 내밀겠지. 사라진 이들의 노래는 들어본 적 없다는 듯이, 노래 따위야 아무 관계없다는 듯이, 지워진 흑판 글씨처럼. 그리고 무거운 발을 들어 커다란 쇠공을 굴릴 것이다.
간다 간다 간다 간다 너는 간다 간다 간다 간다 간다 가는 너는 간다 간다 간다 간다 진짜 간다 간다아아아아아
암전된 우주에 잭팟을 알리는 네온사인이 켜지고 안녕?
내 묘비에 가락은 새기지 마 부러진 바늘과 멥새의 부리와 아까시나무 줄기와 찌그러진 동전 내 묘비명은 검은 산 아름다운 것들일랑은 얼씬도 못하게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윤예영 시인 / 개미마을
좁은 골목길 사이로 남자와 여자가 걸어간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통이 넓은 치마 아래로 여자의 맨다리가 허우적거린다. 여자는 구름 위를 걷고 남자는 진흙탕을 걷는다. 남자는 앞장서서 여자의 손을 잡아당기고 여자는 고개를 숙이고 흘러간다. 남자는 하늘을 보고 있고 여자는 물 속을 들여다본다. 남자는 울고 있고 여자는 아마 웃고 있겠지. 확성기를 매단 트럭이 덜컹거리며 지나간다. 여자와 남자가 지나간다. 여자의 왼발에서 벗겨진 슬리퍼에 양지가 고인다.
강아지풀과 말라 비틀어진 개똥이 말없이 그걸 보고 서있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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