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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송은숙 시인 / 옛 시집을 읽다 마른 꽃잎을 발견했다 외 1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21.

송은숙 시인 / 옛 시집을 읽다 마른 꽃잎을 발견했다

 

 

  그 꽃잎 언제 넣었는지 기억 없다

  어디서 만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무엇이 내 마음을 흔들어

  꽃의 모가지를 꺾게 했는지

  꽃잎은 잘 말라 투명해져

  바닥의 글씨까지 비쳐 보인다

  꽃잎의 마른 살은 쓸쓸에 걸려있고

  여윈 줄기는 몇 행 아래

  빈 집을 가로지른다

  꽃잎의 누운 자리

  왠지 꽃잎의 마음 비치는 것 같다

  처음 꺾여져 갈피에 꽂힌 뒤

  조금씩 물기 잃고 말라갈 때

  꽃잎은 아픈 몸 이끌고 배밀이를 하며

  저 쓸쓸한 빈 집의 자리에 가

  누웠을 것이다

  빈 집의 빈 공간을 마른 향기로 채우며

  투명해져서, 한 없이 맑아져서

  빈 집의 마음 같아져서

  쓸쓸한 빈 집 지닌 시인의 마음 같아져서

  그러나 그 시집 오래 잊혀져

  쓸쓸함 더욱 깊어져

  텅 비어가

  마른 꽃잎 마침내 시집의 빛깔 닮아가

  시들고 여윈 줄기 아니었다면

  묵은 시집의 살인듯 그대로 지나쳤을

  빈 집이었을, 빈 시집이었을

 

  무심코 뽑아든 옛 시집 속에서

  무심하지 않은 꽃잎을 보며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송은숙 시인 / 숲의 상처

 

 

  숲으로 난 길을 본다

  하얗게 뼈처럼 드러난 길은

  숲의 상처다

  상처는 숲의 심장부를 향한다

  상처에 엉겨 붙은 파리떼처럼

  늑골과 혈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오래 전 아버지 쓰러졌을 때

  하얀 오리 목에 뿜어져 나오던

  생피를 생각한다

  그 생피가 아버지를 살렸는지

  사람들은 한 모금의 생피를 머금고

  한 바가지의 하얀 생피를 안고

  만족한 얼굴로 돌아간다

  상처 있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듯이

  상처를 품은 칠월의 숲,

  아름답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송은숙 시인

대전에서 출생. 2004년 『시사사』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