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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시인 / 옛 시집을 읽다 마른 꽃잎을 발견했다
그 꽃잎 언제 넣었는지 기억 없다 어디서 만났는지, 이름이 무엇인지 무엇이 내 마음을 흔들어 꽃의 모가지를 꺾게 했는지 꽃잎은 잘 말라 투명해져 바닥의 글씨까지 비쳐 보인다 꽃잎의 마른 살은 쓸쓸에 걸려있고 여윈 줄기는 몇 행 아래 빈 집을 가로지른다 꽃잎의 누운 자리 왠지 꽃잎의 마음 비치는 것 같다 처음 꺾여져 갈피에 꽂힌 뒤 조금씩 물기 잃고 말라갈 때 꽃잎은 아픈 몸 이끌고 배밀이를 하며 저 쓸쓸한 빈 집의 자리에 가 누웠을 것이다 빈 집의 빈 공간을 마른 향기로 채우며 투명해져서, 한 없이 맑아져서 빈 집의 마음 같아져서 쓸쓸한 빈 집 지닌 시인의 마음 같아져서 그러나 그 시집 오래 잊혀져 쓸쓸함 더욱 깊어져 텅 비어가 마른 꽃잎 마침내 시집의 빛깔 닮아가 시들고 여윈 줄기 아니었다면 묵은 시집의 살인듯 그대로 지나쳤을 빈 집이었을, 빈 시집이었을
무심코 뽑아든 옛 시집 속에서 무심하지 않은 꽃잎을 보며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송은숙 시인 / 숲의 상처
숲으로 난 길을 본다 하얗게 뼈처럼 드러난 길은 숲의 상처다 상처는 숲의 심장부를 향한다 상처에 엉겨 붙은 파리떼처럼 늑골과 혈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오래 전 아버지 쓰러졌을 때 하얀 오리 목에 뿜어져 나오던 생피를 생각한다 그 생피가 아버지를 살렸는지 사람들은 한 모금의 생피를 머금고 한 바가지의 하얀 생피를 안고 만족한 얼굴로 돌아간다 상처 있는 삶이 아름다울 수 있듯이 상처를 품은 칠월의 숲, 아름답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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