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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강 시인 / 허물어지는 오후
오후가 깊어지자 나는 먼지투성이 다락이 되었다 한없이 기다란 얼굴로 흩어진 양말들을 한짝 한짝 주머니에 담아 넣고 고요하게 공기를 불러 들였다
헝클어진 겨울과 엇갈린 그림자들이 기울어가면 거위를 쫓아다니는 꼬마들의 거리에는 오후 해가 더욱 깊숙이 그늘을 만들었다
플라타너스 나무 아래 평상을 치고 저무는 해를 보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정박아 소년 절름발이 떠돌이 개 나직한 얼굴들이 마을 어귀를 에워싸고
손 때 묻은 아빠의 법전들 먼지 자욱한 서가에도 늦저녁 밥상이 한 상 올라올 듯하다 흩어진 페이지들은 들추어 낼 때마다 허물어지고
나의 공기들은 조그맣게 춤추는 검은 실루엣 시린 노을 속 헐벗은 왈츠가 되어 비탈진 시간을 맨발로 걸어갔다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김이강 시인 / 아마츄어리즘 ㅡ무릎
오늘따라 모두가 내게 길을 아무렇게나 알려 주었어요 그런 때에 길을 헤매며 드는 느낌은 경멸에 찬 시선을 은밀하게 받는 느낌과 비슷해요 하지만 따뜻한 맥주를 마시고 지금은 편안히 쉽니다 늙은 눈동자들이 어깻죽지에서 풍성하게 피어오르고 있어요 나는 뚜껑을 덮습니다 지금은 편안히 쉬고 있으니깐요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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