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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시인 / 모래시계가 있는 방
그가 오래 비워둔 방에 들어섰을 때 거울은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머리맡의 모래시계는 천상의 시간을 비우고 지상에 무덤 하나 만들어 놓았다
그는 부러진 늑골로 누워 있었다 문병 온 사람들은 늘어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들에게서 그는 죽어가는 자신의 시선을 보았던가? 어디에도 가닿지 못하는 시선은 남은 불빛을 하나씩 꺼나갔다
모래시계에 갇힌 지평선은 검은 구멍으로 흘러내렸다 시간은 그의 입에 모래를 부어넣었다 모래 흐르는 소리 이명처럼 울리고 눈썹 위로 지평선이 올라가겠지
그는 어디로도 떠나지 않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누구도 아닌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태양과 바다를 오가는 구름처럼, 언제나 다시 태어나는 자에게 죽음은 잠을 완성시킬 뿐이다
죽은 가지 끝에 눈을 틔우는 봄처럼 그는 이 지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몹시 더운 방 너머, 눈 덮인 저 길 너머로 시간은 오래 흐르고 흐르리라
모래시계가 만든 무덤, 누가 뒤집어 놓을 것인가? 천상의 시간을 지상에 펼쳐놓는 사막에서의 밤처럼, 모래시계는 비어있는 시간에 다시 젖줄을 댈 것인가?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김연아 시인 / 창(窓) - 풍천장어가 있는 수족관
강변역 지나 한의원 가는 길에 풍천장어가 산다 장어는 서로의 몸을 감고 죽은 듯이 수족관에 담겨있다 물고기도 물에서 익사할 수 있을까? 나는 그곳을 지나 소생한의원으로 간다
사람들은 혼자일 때도 어디론가 끊임없이 전화를 한다 나는 물속에 가라앉은 나뭇잎처럼 고여 있었다 하루도 쉬지 않고 배수구로 벌레들이 날아들었다 하루살이 같은 벌레는 창 아래서 그의 하루를 닫았다
비누거품 쇼에서 비눗방울에 갇힌 아이들을 보았다 비눗방울이 다른 비눗방울과 나란히 떠있다 너는 너의 얼굴 속에 나는 내 얼굴 속에 갇혀있는 걸까? 창 밖에 태극기가 펄럭인다 펄럭이는 건 나인지도 모른다
불을 끄고 손가락뼈를 더듬어본다, 내 몸에 건네는 나의 밤인사 금이 간 레코드판처럼 되풀이되는 관념의 수다 나의 고통은 '나'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일 거야
밀물을 따라 바람이 들어오는 선운사 풍천강, 하늬바람을 타고 올라온 풍천장어가 산다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다 다만 학의 다리를 물고 강을 올라가는 풍천장어와 선운사를 따라 흘러내리는 동백꽃을 상상할 뿐
사원의 벽을 감고 오르는 스퐁나무처럼 풍천장어는 수족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우리는 졸고 있다가 죽을 때 잠시 깨어나는 것일까? 바람이 지나 가며 구름을 창으로 옮겨놓는다 이쪽이 바로 저쪽일까?
웹진 『시인광장』 2008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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