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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서 시인 / 누가 아서를 키울까
아서, 작은 새를 잡으면 안 된다. 아서, 비누는 욕실에 두고 단추는 목까지 채워라. 아서, 레이스가 또 떨어졌잖니? 아서, 배가 고파도 개미는 집어먹는 게 아니란다.
엄마는 날마다 나를 무릎에 앉혀 놓고 신발에 묻어온 진흙길을 털어주었다. 어깨 위의 자작나무도 털어주었다. 거미줄도 털어주었다.
아서, 물고기는 너와 잘 수 없어. 아서, 차라리 제라늄을 심자.
엄마는 나의 다른 손을 꼭 잡아주었다. 나도 새도 나무도 고양이 이름 같은 그 이름을 그만 듣고 싶었지만 엄마는 꿈속에서도 아서라 불렀다.
아서, 왜 대답은 않고 울기만 하니? 아서, 숙제는 다 했니? 아서, 일기는 저녁 먹고 꼭 써야 돼!
나는 잔뜩 조여진 턱받이를 두르고 저녁을 먹었다. 숟가락으로 한 살 두 살 세 살 다소곳이 떠먹었다 그렇게 서른두 숟갈
더 이상 아무도 나를 아서라고 부르지 않게 되었을 때 내 딸이 아서가 되어 있었다. 딸의 꿈속에 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발표
김현서 시인 / 그 자와 이 자
그 자와 이 자는 몇 세기에 걸쳐 같은 노래를 불렀다 시간은 방금 꺼낸 군고구마 사랑은 구멍 난 종이봉지 손을 대면 화르르 타오르는 장작불 속의 공포
그 자와 이 자는 몇 세기를 걸쳐 서로를 부정하다 손을 잡았다 그 자와 이 자는 실패를 반복했고 그 때마다 직업과 주소를 바꾸고 몸의 길이를 바꿨다 윤기 잃은 털로 치장을 하고 그 자와 이 자는 누군가 흘려보낸 마른 강물소리를 들으며 건기를 보냈다
그 자와 이 자는 앞을 볼 수 없었지만 몇 세기를 걸쳐 전등을 켰다 껐다 새로운 눈을 찾았다 저녁이 오기 전에 식탁을 차려놓고 그 자가 예치한 저 자를 복제해서 새로운 이 자를 내게 덧붙여 주었다
이 자는 내게 노래하는 아침을 주었다 나는 노래하는 아침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액자에 끼워 넣었다 오븐에 넣었다 건조대에 널었다 신발장에 넣었다 창문에 붙였다
몇 세기가 흘렀지만 나는 그 자와 이 자와 저 자로 동시에 살아갈 다른 얼굴을 찾지 못했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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