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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일환 시인 / 날아라, 닭
누가 냅다 걷어찰 때만 푸드득 날갯짓 시늉을 하는 저 닭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진화는 퇴행의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하여 바람을 피운다고 닭날개를 먹지 못하게 하는 속신(俗信) 따위 믿을 바가 못 되지만 날아라, 닭 날아라, 닭 정작 날아볼 꿈조차 꾸지 않는 자들이 애꿎은 가금(家禽)만 놀려대는 가학성에 대해 나는 오늘 슬퍼지는 것인가
세월은 그냥 흘러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어서 화석처럼 때로는 몽고반점처럼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는 법인데 저 닭들은 지금 기억은 하고 있는 걸까 그 옛날 화려했던 시절을 꿈속에서나마 만나고는 있는 걸까
생각하면 우리 모두 빛나던 한 시절이 있었거니 푸르른 청춘의 날들은 가고 퇴행성관절염이나 걱정하는 무리들에 섞여 바쁘게 흘러가다 날아라, 닭 날아라, 닭 우리들 또한 누군가에게 냅다 걷어차인다면 그제서야 소스라칠 것인가
지상의 삶은 여전히 소란하고 날갯죽지 가려운 날들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발표
박일환 시인 / 새 눈
이른 봄비 그치고 가지마다 작은 빗방울들 옹기종기 매달려 있는데
차마 떨어져 내릴세라 나뭇가지들 내민 팔 함부로 흔들지도 못하는데
끌어안고 기댄 자리마다 병아리 부리 같고 아기 입술 같은 새 눈이 머잖아 돋아나리니
철모르는 아이처럼 봄은 기어이 오겠구나 방긋 웃으며 오겠구나
지난겨울 생각에 나는 자꾸만 눈물부터 글썽거리는데…… 어린 것들만 보면 안쓰러운데……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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