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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영 시인 / 아침
아침은 참새들의 휘파람 소리로 온다. 천상(天上)에서 내리는 햇빛이 새날의 커튼을 올리고 지상(地上)은 은총(恩寵)에 눈 뜨는 시간(時間), 아침은 비상(飛翔)의 나래를 준비하는 저, 신(神)들의 금관악기(金管樂器), 경쾌한 참새들의 휘파람 소리로 온다. 아침이 오는 길목에서 나누는 인사(人事), 반짝이는 눈빛, 어두운 산하(山河)를 건너서 바람 부는 들녘을 날아서 너는 태초(太初)의 축복으로 내 손을 잡는다. 아아, 그것은 하나의 작은 역사(歷史), 인간(人間)은 누구나 자신의 역사(歷史)를 창조(創造)한다. 부신 햇빛으로 터지는 함성(喊聲), 아침이 오는 길목은 지상(地上)의 은총(恩寵)이 눈 뜨는 시간(時間), 사랑하는 아이들을 위하여 어머니는 조찬(朝餐)을 준비하고, 장미(薔薇)는 봉오리를 터친다. 아침이 오는 길목에서 나누는 목례(目禮), 아아, 너와 내가 엮어 가야 할 무언(無言)의 약속(約束).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문학사상사, 1983
오세영 시인 / 여윈 손
내가 잠든 뒤에도 빨래는 어둠을 지킨다.
늘어진 운명(運命)의 줄을 붙잡는 여윈 손.
그는 스스로 절대(絶對)의 허무(虛無) 앞에 던져지기 위하여 체온(體溫)을 버린다.
밤의 적막(寂寞)은 바람들의 세상이지만 깨어 있는 우주(宇宙)의 창 밖에서
빨래는 어둠의 공간(空間)에 하나의 밧줄을 던진다.
스스로 육신(肉身)을 포기하는 자(者)의 저 완벽한 연기(演技).
가장 어두운 날 저녁에, 문학사상사, 1983
오세영 시인 / 역두에서
우리는 단지 잠깐 쉬고 있을 뿐이다. 저무는 플랫폼 길은 영원으로 열려 있고 영원에 종점이란 없다.
쉰다는 것은 이별과 만남의 교차, 달리는 순간엔 모두가 하나다.
떠난 자를 미워마라 참으로 열심히 달려왔다. 긴 터널과 외로운 가교 복사꽃 피는 마을도 있었지만 폭풍우 치는 밤이 더 많았다.
이 세상은 승차와 하차로 이루어지는 평행선.
그 끝없는 레일을 달리며 우리의 이별은 만남을 다시 꿈꾼다.
오세영 시인 / 원시(遠視)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것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의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벌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은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다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오세영 시인 / 이별의 말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기다려달라는 말은 헤어지자는 말보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별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하는 것이다 "안녕" 손을 내미는 그의 눈에 어리는 꽃잎 한때 걱정으로 휘몰아치던 나의 사랑은 이제 꽃잎으로 지고 있다 이별은 봄에도 오는 것, 우리의 슬픈 가을은 아직도 멀다 기다려 달라고 말해다오. 설령 그것이 마지막의 말이 된다 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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