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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한명원 시인 / 침묵의 종류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2.

한명원 시인 / 침묵의 종류

 

 

언론은 말 대신 흰 마스크를 팔기 시작한다

마스크 끈을 귀에 걸고 입을 봉쇄

침묵에는 귀의 협조가 필요하다

입안의 말을 모두 꺼내고 X 하나를 넣는다

혀가 복종의 맛으로 굳어질 때

목구멍은 짧은 시간에 퇴화한다

콧김은 축축함으로 마스크에 어둠을 적고

입술은 닫힌 시간을 견딘다

 

이빨과 이빨 사이에 물리는 재갈

타의적 묵언이다

이것이 성립되려면 두 손,

두 발을 묶어 주어야 성립한다

비명은 불구의 맛을 느끼고

검은 구멍 속으로 떨어진다

 

음 소거는 소리를 없애고 무성이 된다

입 모양은 자유로워 온갖 욕설

타인을 위한 비난과 협잡이 허용된다

입 모양 가지고는 처벌할 수도

말의 모양을 비난할 수도 없다

누군가의 뒤에서 이렇게 말할 때가 있다

 

자의로 또는 타의로 침묵의 시위를 한다

 

웹진 『시인광장』 2020년 2월호 발표

 

 


 

한명원 시인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중앙대 대학원 문예창작학과 석사 졸업. 시집으로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