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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공광규 시인 / 추운 밥 외 2편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3.

공광규 시인 / 추운 밥

 

 

겨울 아침 인도 위

비둘기 한 마리가

깃털을 덮고 누워있다

찍어먹다 남은 토사물이

주검 옆에 얼어있다

 

부러진 고개를 꺾고

빨간 발을 오므린 채

대리석 신축빌딩 아래서

삶을 멈춘 그를

매정한 바람만 감싸고 있다

 

오늘 새벽 슬픈 부리로

얼어있는 밥을 찍어 먹다

사람의 발길에 채였거나

갑자기 날아가려다

시멘트벽에 부딪쳤을 것이다

 

눈앞에 두고 간 밥을

저승에서도 못 잊겠는지

차마 감지 못한 눈으로

서울 하늘 아래

추운 밥을 바라보고 있다.

 

 


 

 

공광규 시인 / 뉴스를 들었다

 

 

실직한 친구를 위로하러 가다가

여관에서 한 여자와 잤다

 

여관 문을 밀고 들어왔던 그 여자

다음날 친구네 집에서 보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자동차 안에서 뉴스를 들었다.

 

"실직한 남편을 대신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선 주부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정부는... "

 

 


 

 

공광규 시인 / 말씨

 

 

마음으로 만졌을 때

악기처럼 아름다운 당신

몸 속에서 튀어나온 부드러운

말씨 한 알이 어느새

들숨 날숨 통해 내 몸 속

허파꽈리거나 위벽에 붙어

가는 뿌리를 내리고 잔가지를 뻗는다 했더니

내 마음 천장까지 뚫고 자라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한참 쓰리고 아플 때는 몰랐는데 그것이

내 몸 속 실핏줄까지 뻗어 가는 당신이었다니

심장이 터지고 가슴이 찢어져서야

당신이 크게 내 안에 자라있음을 알다니

그리움의 숲에서 한아름 커진 당신을

마구 안아보다 감당이 안돼

그 나무 아래 가서

앉아있기도 누워보기도 하다

아예 기둥 삼아 집을 지어

오래오래 머물거나 장작으로 패서

남은 생애를 따뜻하게 데우거나

관을 짜서 함께 썩으려고 합니다.

 


 

공광규 시인

1960년 충남 청양에서 출생. 1986년 《동서문학》을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대학일기』, 『마른잎 다시 살아나』, 『지독한 불륜』, 『말똥 한 덩이』 등과 시론집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시 쓰기와 읽기의 방법』 그리고 논문집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등이 있음.  제1회 신라문학대상과 제4회 윤동주상 문학대상 등을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