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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균수 시인 / 사랑
언젠가 당신의 사랑도 지치겠지 더 이상 어둠 속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감싸 쥐지 않겠지 정돈된 넓은 방안을 천천히 거닐다 실눈으로 창문 쪽을 바라보다 출입문으로 걸어가 처음으로 손잡이 쪽으로 손을 뻗겠지 채 손이 닿기도 전에 쇼핑센터의 자동문처럼 문이 열리고 잠깐 산책을 가듯 방을 나서겠지 등 뒤에서 닫힌 문이 사라지는 줄도 모르고 마른 꽃들 아래 나비들의 무덤을 지나 빛바랜 천 조각들 주렁주렁 열린 죽은 나무들의 숲을 지나 손길에 닦여 반질해진 검은 바위에 앉아 말라버린 샘에 발을 첨벙거리고 구름 한 점 없는 바람 한 점 없는 검붉은 하늘을 올려다보겠지 피와 살점이 말라붙은 가시덩굴 옷깃만 스쳐도 후두둑 부러지고 작은 짐승들의 옛집 잊혀진 구멍들을 지나 시멘트로 메워진 벼락 맞은 고사목 아래로 풀벌레들 날뛰던 풀밭 자리 너머 물길 끊어진 개울 징검다리 건너 샛노란 보도블록이 깔린 넓은 길을 따라 나의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 철골만 남은 건물들의 도시 안으로 음악이 흐르던 상점들 아직도 웃음소리가 묻어있는 스피커 아무도 없는 광장 발끝에서 익숙한 스텝이 되살아나 잿빛 허공의 손을 잡고 춤을 추겠지 입맞춤의 기억이 드러나는 줄도 모르고 긴 잠에서 깨어난 먼지들 귀찮은 듯 날아오르겠지 빈 골목들 빈 집들 어느 가슴 서늘한 집 손가락이 알고 있던 번호를 누르고 삐걱거리며 삭은 문이 열리겠지 식탁에 앉아 무표정하게 손에 든 것을 바라보고 있는 낯익은 형체를 보게 되겠지 빛바랜 사진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미동도 하지 않겠지 앙상한 어깨에 손을 올려놓으면 마침내 내 사랑은 조금씩 몸을 허물어뜨려 바닥에 쌓이겠지 언젠가 내 사랑도 지치겠지 당신의 사랑도 서서히 무너져 내 사랑 위에 쌓였다가 창이 열리고 바람이 불어 흔적도 없이 흩어지겠지
웹진 『시인광장』2009년 가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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