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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재 시인 / 환각통
그 많던 잎들은 어디로 갔을까 이제 햇볕을 물고 깔깔거리던 한낮이 지나고 그루터기만 남은 저녁, 그 위에 앉아 잘린 내부를 본다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시간, 겹겹이 숨어 있던 생의 여러 국면들 아직 환하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만나 가장 먼 곳에서 이별했다 생장점은 이미 잘려 나간지 오래, 남은 것이 없으니 떼어낼 것도 없지만 아직 없는 손끝이 아픈 저녁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기억은 늙지도 않아 우기와 건기의 절기를 따라온 시간의 고리들 차곡차곡 차고 앉아 죽지도 살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여기서 대체
우리가 국수 가락의 처음과 끝처럼 앞도 뒤도 없이 하나였을 때, 권모술수 없이도 주문을 외울 줄 알아 봄밤은 태평성대 국수의 어원은 매듭을 풀다, 풀 수 없는 매듭을 잘라버리고 처음도 없고 끝도 없는 파문의 더미 위에 앉아
침묵같은 휴일의 산책 누가 따라오는 것 같아 자꾸 뒤돌아보는데 그루터기와 나 사이, 비단 같은 사양 한 자락 미끄러지고
없는 기억이 아픈 저녁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발표
김선재 시인 / 접속사
숲으로 한 남자 걸어가고 풀숲에서 한 여자 일어서는 거리
사과나무가 사과나무가 되고 배나무가 배나무로 변하는 동안 뻐꾸기는 내내 낯선 둥지에서 운다 그것이 기호의 운명
별의 아이들은 태어나지 못하고 잠든 창 밖에서 밤새 말을 걸지만 낮은 곳을 향해 자라는 우리는 굴뚝에 매립된 전생을 알지 못한다
먼 곳의 너에게 편지를 쓴다 가슴을 탕탕 치며 탕탕 허공을 향해 튀어나간 말들은 아무 것도 쓰러뜨리지 못하고 과녁을 흔드는 것은 언제나 바람 바람이 데려온 별, 별의 아이들은 혀를 말고 울어 말린 혀 속에 감춘 첫 문장 기억나지 않아도 새빨간 눈 비비며 그러나, 그래서, 그래도 살겠지
숲으로 들어간 남자는 12월 밑에 서 있다 푸른색으로 가장한 우의를 입고 사랑이 사람이 되길 기다리는 동안 풀숲에서 일어선 여자 다시 숲에 누워 2월이 되었다
아직 눈 내리고 우리는 더 낮아져 별은 언제나 혼자 빛난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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