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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명 시인 / 물국수 한 그릇
가을날 거둬들인 우주들판의 최고로 높이 쌓아올린 노적가리 고요히, 고스란히 불타오르던 노적가리 우주賞級으로 받은 우주심장
우주 환승역이 있는 종로 3가 혼잡하면서도 슬로우비디오 같은 뒷길의 뒷길 여인숙과 돼지껍데기볶음집 물국수집이 비좁게 붙은 골목 허름한 물국수집의 틀어진 문을 밀고 들어가 3천원짜리 물국수 한 그릇을 그가 사줬죠 3천원 물국수 맛은 4천원짜리 그 이상이 되고도 남을 만치 시원하고 뜨겁고 진하고 그러면서도 뭔지 이상한 금방 배고플 것 같은 맛으로 하여튼 그가 뭘 사줘 본 것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죠 내가 계산하려 했는데 웬일인지 그가 얼른 계산하데요 3만원짜리였으면 절대 그럴 리가 없었겠지요 물국수집을 나와 커피집에 들어가 탁자를 사이에 놓고 서로 커피잔을 만지작거리긴 했지만 생략하겠어요 결론은 대기권이 연기로 자옥한 우주 환승역 입구에서 서로 알 수 없는 채 길을 갈랐다는 것 그가 한번 힐끗 뒤돌아보았던가요 내가 한손을 맥없이 올렸다 내렸던가요 자옥한 환승역 입구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고 붙박혔죠 3천원짜리 물국수 한 그릇의 이상한 국물맛 묵어 쩐 국물멸치의 비리고 귀귀하고 덥덥하고 쓰겁고 한 멸치똥 맛 이상하게 시원하고 뜨겁고 진하면서도 금방 배고플 것 같은 묽은 국물맛이 세워진 것이 된 텅 빈 몸속을 타고 흘렀죠 묽은 국물맛이 빈 몸속을 통과하고 있을 때 그것의 정체가 영원한 이별인 것을 우주심장이 툭 떨어지는 걸로 분명히 알았죠
그동안 거둬들인 우주들판의 최고로 높이 쌓아올린 노적가리 우주상급으로 받은 우주심장을 떨어뜨린 죄를 무슨 말로 다할 수 있을까요
빈 몸을 끌고 지옥도를 발 없이 흘러 내려가 펼쳐지는 아비규환의 지옥철을 눈먼 눈으로 가늠하며 북으로 가는 지옥철로 가까스로 흘러들었죠 이 지옥철로나마 흘러들 수 없었다면 지옥에도 못 가 미아, 우주먼지로 부서져 두 번 다시 상급으로 받은 우주심장을 떨어뜨린 죄를 절대 빌 기회조차 없을 테니까요 우주 환승역이 있는 자옥한 종로 3가 떨어진 내 우주심장이 마지막 물국수 한 그릇의 인사를 어찌 잊을까요 마른 먼지 낙엽들에 뒤엉켜 11월의 가로에서 2천50년까지는 검게 구르고 있을 겁니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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