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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애 시인 / 꿈꾸는 그림자
엄마는 발목을 묶은 채 나를 끌고 다닌다. 언젠가 엄마의 등 뒤에서 무게를 잃고 떨어진 기억이 있다. 나는 엄마가 벌인 가지, 빛의 이파리다. 한 발자국도 뗄 수 없는 등급 없는 장애아다.
일요일 오전 아홉시, 나무처럼 산비탈을 오른다. 산을 오를 때마다 왜 엄마는 가파르고 위험한 길로만 나를 데려가는 걸까. 나는 떨어져 내리면서 태어나는 존재, 서어나무, 맥문동, 침엽의 향기 덧씌우며 내려앉는다.
어둠의 세계를 떠도는 빛에 이름을 붙인다. 삶이라는 바닥의 굴곡과 강도와 마찰을 체험하는 것이 즐겁다. 엄마의 몸을 줄였다가 늘이고, 숨기고 꾸미는 것은 나의 일과, 그것은 내가 늘 자연과 인간의 합체를 꿈꾼다는 증거다. 나는 매순간 새로운 영혼으로 태어난다.
오늘은 어제보다 좀더 서정적으로 살다가 형식적으로 죽고 싶다. 어느덧 슬금슬금 시간의 검은 멍이 땅바닥에 나를 파종한다. 나는 환하게 들어올려져 그림자처럼 사라진 텅 빈 엄마를 불러본다.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이선애 시인 / 인어의 사랑
인어 한 마리, 재래시장 좁은 통로에서 파닥거린다. 하루를 몽땅 써버리고 애가 탄 노을에 꼬리를 단다. 검정 고무부대에 하체 쓸어 담고 인파 헤치며 노를 젓는다. 등에 붙은 스피커에서 흐르는 노래 귀를 막아도 365일 돌아가던 공단의 기계소리다. 식구가 모자란 손가락 뻗어 바구니지갑 밀었다가 당긴다. 인어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은 적 없는 바닥을 끌어안고 일 보 일 배 올린다. 콱 막힌 가슴속 수로를 순례하는 느림보 사랑이 간다. 내 전생도 그와 닮은 鍾이었는지 보도블럭처럼 가슴이 울룩불룩 요동친다. 유행가처럼 쉽게 흘러가고 잊어버리는 이 시대의 사랑법, 숨 막힌다. 사랑아, 얼굴 좀 보며살자!
웹진 『시인광장』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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