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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시인 / 망가진 기계
허겁지겁 출근하는 나를 앞집 개가 짖지도 않고 멍하니 쳐다본다
"망가진, 덜그럭거리는, 감가상각이 끝나 가는 기계가 겨우 굴러가고 있구나" 개는 이렇게 생각하고 있나보다
개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는 이 밀림의 누구인가
생산성과 헐떡이며 성교를 벌이고 있는 나는.
공광규 시인 / 늙은 집
머위 등나무꽃, 칡순이 움트며 내려다보는 길이 가는 실처럼 겨우겨우 물길 따라 이어지는 척산에서 이 십리 심수 골짜기에 늙어서 등이 굽은 기와집 한 채가 누워있다
햇빛이 너무 무거워서 내려앉은 마루 바람이 하도 드나들어 어긋난 문짝 급한 빗발이 방안을 엿보다가 부러뜨린 문살 세월의 이빨이 흑벽을 뜯어먹고 있다
토끼똥 노루똥이 수북한 마루 밑에는 산짐승들이 몇 날 몇 밤 사랑을 나누다 간 다정한 흔적 썩어 가는 기둥 옆 호로병은 입술이 깨져서 옛이야기를 한마디도 들려주지 못하겠단다
망가진 샘터에는 미나리가 저 혼자가 크고 마당을 덮은 풀들이 변소까지 달려가 푸른 똥을 누고 있는 것을 늙은 감나무만 옛날 그 자리에서 구부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시간의 망치가 깨뜨리는 기왓장 소리에 놀란 구렁이는 밤마다 지붕 위에 올라 햇빛과 바람과 하염없는 물소리를 원망하며 용마루에 서러움의 길이를 대볼 것이다.
공광규 시인 / 孔처사 전상서
뒤꼍 대숲 건너가는 빗소리 산등성이 파도쳐 오는 솔바람소리 데리고 앉아 눈 푸른 당신과 차 나누며 마음속 구름 확 열어 젖혀본 게 언제였던가 올 겨울 폭설에 갇혀 세간에서 보내온 잡문은 읽지도 않고 백김치 국물 뚝뚝 떨어지는 공양 짓다말다 끄떡거리는 헌 經床을 천수경으로 받치고 經을 읽다 말다 하다 나무부처 도끼로 찍고 시줏돈으로 불 쏘시게 하여 몸이나 훈훈히 지피다가 저 순백의 本地風光으로 먼저 갑니다 그러니 눈 녹으면 여름 장마에 떠내려간 다리를 대신하여 돌부처 끌어다가 거기 산문 밖 사람들 쉽게 절에 오르도록 징검다리 놓아주세요 내 시신을 찾느라 인력을 낭비하지 말고 장작을 없애 사리도 수습하지 말며 비석과 부도로 기억하지 말아 살은 짐승과 벌레의 먹이가 되고 뼈가 부서진 자리에 풀 한 포기 자라게 그냥 내 버려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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