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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 그믐달
달이 팽나무에 걸렸다
어머니 가슴에 내가 걸렸다
내 그리운 산(山)번지 따오기 날아가고
세상의 모든 딸들 못 본 척 어머니 검게 탄 속으로 흘러갔다
달아 달아 가슴 닳아
만월의 채 반도 못 산 달무리진 어머니
천양희 시인 / 그에게 묻는다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은 늘 같은데 하늘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서울살이 삽십 년 동안 나는 늘 같은데 서울은 볼 때마다 다르다 하겠는지요
길에는 건널목이 있고 나무에는 마디가 있다지요? 산천어는 산속 맑은 계곡에 살고 눈먼 새는 죽을 때 한번 눈뜨고 죽는다지요?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살고 기린초는 척박한 곳에서만 산다지요? 귀한 진주는 보잘것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지요?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고 모든 문제는 답이 있다지요?
사는 것이 왠지 슬픈 생각이 든다고 하겠는지요 슬픔을 가질 수 있어 내가 기쁘다고 하겠는지요
천양희 시인 / 끈
수평선이 되고 싶다
한 평의 바다도 못 가진 채 수초처럼 걸려 흔들리는 당신에게
허전하게 편하거나 편하게 허전한 수평선 하나 주고 싶어
우리가 껴안은 수많은 해안선
세상의 끈이 이렇게 길었구나.
천양희 시인 / 나무의 힘
산이 불탄 끝에 어두워진다 재의 바람이 낮게 산을 쓸며 지나간다 바람맞을 나무는 이제 없다 품속같은 숲 사라지고 새소리 어느덧 사라지고 구불텅한 언덕 사라지고 죽음보다 더 슬픈 시간이 갔다 까맣게 속 탄 나무들 가지들 남은 무엇이 있어서 무어라 무어라 말할듯도 하다 가지 한자락에도 산은 저토록 그리움으로 속이 탔다는 것인가 어린 꽃잎 하나 불쑥 내밀고 있다 苦生도 저렇게 눈부시다니!
천양희 시인 / 나의 거울
자신을 잘 모를 때 자신을 과신할 때 물에 얼굴을 비추지 말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비추어보라는 말을 거울삼습니다.
어려운 일을 견뎌야 할 때 힘든 일을 인내해야 할 때 귀한 진주는 보잘것없는 조개에서 나오고 아름다운 옥구슬은 거친 옥돌에서 나온다는 말을 거울삼습니다.
잘못된 일 때문에 후회할 때 실패한 일 때문에 좌절할 때 희망보다 더 좋은 친구는 없고 절망보다 더 나은 교사는 없다는 말을 거울삼습니다.
천양희 시인 / 너는 나다
함께 있어도 거리를 지키는 벼가 있다 우짖음으로 자신을 지키는 새가 있다 울음소리로 존재를 알리는 벌레가 있다 하루에 몇십만번 물결치는 파도가 있다 물살이 역류하는 개울이 있다 나무 위에 사는 나무가 있다 잎 끝에 돌기를 가진 꽃이 있다 한평생 물 안 먹는 짐승이 있다 죽어가면서 빛을 달라고 한 사람이 있다 다시는 태어나지 않을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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