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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양희 시인 / 바람편지
잠시 눈감고 바람소리 들어보렴 간절한 것들은 다 바람이 되었단다 내 바람은 네 바람과 다를지 몰라 바람 속에서 바라보는 세상이 바람처럼 떨린다 바라건대 너무 헐렁한 바람구두는 신지 마라 그 바람에 걸려 사람들이 넘어진다
두고 봐라 곧은 나무도 바람 앞에서 떤다, 떨린다
천양희 시인 / 바퀴
철물점 지나다 버려진 바퀴를 본다 구르지 않는 바퀴를 보면 명퇴당한 아비들 같아 덜커덕, 숨이 멎는다 한때 신나게 굴러갔을 저 바퀴 바퀴는 굴러갈 때 바퀴인 것이다
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내 앞을 지나간다 소년은 아직 바퀴의 속력을 모를 것이다 차들이 바퀴를 굴리며 달려간다 속력은 모두 바퀴 때문이란 걸 모를 것이다 구르는 바퀴는 물러서지 않는다 달릴 수 있을 때 달리는 것 그것이 바퀴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바퀴가 되어 세상을 굴리고 싶다
천양희 시인 / 발 없는 새
바람이 불어, 바람이 왜 불지? 바람이 불면 발 없는 새 발이 없어 바람 속에서 쉰다네 날다 지치면 바람 속에서만 쉰다네
바람이 불어, 바람이 왜 불지? 바람이 불면 발 없는 새 발이 없어 지상으로 내려갈 수 없다네
바람이 불어 ,바람이 왜 불지? 바람이 불면 발 없는 새 발이 없어 지상으로 내려가면 죽는다네
바람이 불어, 바람이 왜 불지? 바람이 불면 나도 바람 속에서 쉬고 싶다네 발 없는 새처럼 쉬었으면 한다네
바람이 불어 ,바람이 왜 불지? 바람이 불면 바람 속에서 쉬는 새 바람같이 소리치고 있다네 내 발 어디에 있지?
하늘을 나는 새는 자취가 없다네
천양희 시인 / 밥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워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천양희 시인 / 배경이 되다
새벽이 언제 올지 몰라 모든 문 다 열어놓는다고 그가 말했을 때 꿈꿀 수 있다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나에게만 중요한 게 무슨 의미냐고 내가 말했을 때 어둠을 물리치려고 애쓴다고 그가 말했다 생각의 끝은 늘 단애라고 그가 말했을 때 꽃은 나무의 상부에 피는 것이라고 내가 말했다 세상에 무늬가 없는 돌은 없다고 내가 말했을 때 나이테 없는 나무는 없다고 그가 말했다 바람이 고요하면 물결도 편안하다고 그가 말했을 때 산은 강을 넘지 못한다고 내가 말했다 더이상 할말이 없을 때 우리는 서로의 배경이 되었다
천양희 시인 / 부재
내집 주소를 기억하지마. 나를 기억하지도 마. 주소 불명 수취인 불명 나는 지금 행방불명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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