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시인과 시(현대)

함기석 시인 / 구름 낀 문장

by 파스칼바이런 2020. 5. 31.

함기석 시인 / 구름 낀 문장

 

 

배 한 척이

푸른 콧수염 휘날리며 항구로 들어서고 있다

 

먼 우주에서 유성우가

해변의 결혼식장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려오듯

 

폭죽이 터지고

장미와 피가 구름에 스민다

 

저 멀리 도시에서 어둠은 흰 붕대처럼 풀어지고

밤마다 섬 해안선 따라

 

온몸을 고대의 어휘로 문신한 나신의 여인들이

검고 긴 바늘 춤을 춘다

 

땅의 입과 하늘의 항문을 촘촘히 꿰매어 움직이도록

숨 쉬도록

 

나는 어두운 급류

너는 눈보라 치는 사막, 우린 구름 낀 문장

 

낮과 밤이 사라지고

무모한 장미는 찢긴 눈이 아름답다

 

하얀 드레스 길게 끌며 바다 위로 걸어오고 있다

또 한 척의 도도한 배가

 

월간『현대시』 2019년 10월호 발표

 

 


 

함기석 시인

1966년 충북 청주에서 출생. 1993년 한양대학교 수학과 졸업. 1992년 《작가세계》를 통해 등단. 저서로는 시집으로 『국어선생은 달팽이』(세계사, 1998)와 『착란의 돌』(천년의시작, 2002), 『뽈랑공원』(랜덤하우스, 2008), 『오렌지기하학』(문학동네, 2012), 『힐베르트 고양이 제로』(민음사, 2015) 그리고 동화 『상상력 학교』(대교출판, 2007) 등이 있음. 2006년 눈높이아동문학상, 2009년 제10회 박인환문학상과 2013년 제8회 이형기문학상, 2020년 제13회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좋은시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