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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 / 쓰디쓴 자유
신이 내리시는 선물은 한난들 달가와할 것 없노니. 바다거북처럼 흘린 안달 끝에 나는 뭍으로부터 풀려났다. 그립고 그리운 바다여. 나는 엉금엉금 그에게 될 수 있는 한, 빨리 달려갔다. 그의 혀가 내 머릴 핥는 순간의 애틋함이여. 나는 풍덩 몸을 던졌다. 나는 유유히 몸을 놀렸다. 나는 자유로왔다. 나는 자유로이 숨통을 물로 채우며 자유로이 가라앉았다. 나는 한없이 자유로왔다.
뭍이여! 나를 반환하겠다. 데려가다오. 꽁꽁 묶어다오.
황인숙 시인 / 아, 해가 나를
한 꼬마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면서 땡볕 속을 걸어온다 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팔과 종아리가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송사리떼처럼 햇볕을 쪼아먹으려 솟구치는 피톨들 살갗이 탱탱하다 전엔 나도 햇볕을 쭉쭉 빨아먹었지 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
황인숙 시인 / 아주 외딴 골목길
이 외딴 골목길 빗방울도 처마에 부딪혀 자주 발 딛지 못하는 곳 길이라기보다는 틈 낡은 장롱 같은 집들의 틈 그 틈, 더 좁아지지 않도록 시멘트로 다져놓았다
길인 듯 아닌 듯 숫기 없는 사람은 그 앞에서 발길을 돌릴 것이다 인기척 없는 집들의 인적 없는 이 외딴 골목길 스티로폼 상자와 고무 양동이 안에 나팔꽃 봉숭아가 피고 지던 흙이 굳어 있다 불 안 드는 빈방처럼
이, 어린애 같아 보이는 길 정작은 나이배기일 것 같은 길 시멘트가 빈틈없이 깔려 있는 그러나 이 야성적인 길.
황인숙 시인 / 아직도 햇빛이 눈을 부시게 한다
버스가 모퉁이를 도는 순간 햇빛이 유리창처럼 떨어졌다. 아찔! 나무가 새겨진다. 햇빛이 미세하게 벚꽃을 깎아낸다. 벚꽃들, 뭉게뭉게 벚꽃들.
청남빛 그늘 위의 희디흰 눈꺼풀들. 부셔하는 눈꺼풀들.
네게도 벚꽃의 계절이 있었다. 물론 내게도.
황인숙 시인 / 안개비 속에서
나무들은 자기 심장의 박동대로 새를 날린다.
급히 지나쳤으면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으리라. 붉은 신호등 앞에서 겨우내 먼지에 싸여 그 옆의 제설용 모래 상자와 다름없어 보이던 쥐똥나무덤불이 여릿여릿 숨쉬는 것을.
아직도 제설용 모래 상자와 별 다름은 없어 보이지만. 보이는 대로 보지 말아야지. 그녀가 어떻게 보이고 싶었을까? 바로, 봄. 왠지 그러리라고.
붉은 신호등 앞에서 발을 멈추고. 그녀의 잠든 얼굴 위에 오는지 마는지 한 빗소리에 귀기울이며 이제사 네 머리칼도 젖어들고 있다.
황인숙 시인 / 양생
햇빛이 구름을 터트리고 과즙처럼 튄다. 나무들이 일제히 치이익! 산소를 뿜어댈 때 싱싱하고 싱싱한 나무들. 활씬 두팔을 벌리고 껴안자꾸나. 그의 서늘한 가슴에 가슴을 대자꾸나. 쿵! 쿵! 쿵! 나무의 심장을 지나 수액의 흐름을 따라 굳건히 뿌리에 뿌리를 내리고 그리고 우듬지로 치솟아 오, 저처럼! 상쾌히 상체를 젖히고 머리를 흔들어 보자꾸나!
황인숙 시인 / 어두운 장롱
어두운 장롱 열린 서랍 안
바스락 소리를 잃은 목이 바싹 마른 미농지 아래
곱게 개켜진 죽은 엄마 모본단 한복
한입 베어문 센베이 맛 눅눅해지고 나프탈렌 냄새 독하게 밴
어두운 장롱.
-『문예중앙』2002년 여름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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