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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박은경 시인 / 빨간 인형은 인형을 안고
어리석음이 유행처럼 번질 때였지 아프간, 콩고 또 다른 어디선가 한 때의 점령군들 증오와 애국심으로 빨간 인형을 만들었다 했어 제작법은 간단해서 소녀들을 잡아 힘을 합해 쩍쩍 갈라놓기만 하면 된다는 거야
풀숲에서 떠는 숨구멍마다 옹이가 되고 몸 위로 나무껍질 뒤덮이니 한 바람 지나는 사이 소녀였던 나무토막들 숲길을 뒹군다 했지
인형 귀는 나무 귀, 들을 수 없고 인형 눈은 나무 눈, 볼 수 없고 나무 심장은 전처럼 뛸 수 없다 했지
적군의 아이를 낳는 인형도 온통 뻥 뚫려 버린 인형도 나무로 만든 팔다리로는 사라질 수 없다 했지
인형이 인형을 낳을 때 어린 젖을 물려야 하나 울기 전에 비닐봉지를 씌워야 하나 생각조차 멈춰버렸다 했지, 그땐 나무였으니
모두가 견뎌야 하는 지옥으로도 해는 날마다 떠올라서 아이는 인형을 안고 인형은 아이를 안고 순정하게 씻은 몸에 잘 마른 새 옷을 입고 부는 바람 말간 볕에 젖은 머리 말리고 있지
지금 이 순간 이토록 평화로우니 어딘가 어떤 거대한 손이 있어 빨간 인형과 인형의 머리를 가만 가만 쓰다듬는 것만 같지
그 모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이토록 사랑스러우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많이, 영원히 너를 사랑해
웹진 『시인광장』 2010년 8월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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