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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김화순 시인 / 낙양고분박물관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13.

김화순 시인 / 낙양고분박물관

 

 

  공간과 시간이 무한히 축소된 거대한 관

  지하에 깊이 묻혀있을 시간들

  적당한 불빛 아래 죽음으로부터 불려나온 황실 여인

  저 여자의 육체가 한때 한 나라의 왕을 후렸을까

  삭은 옷매무새에 아름다움과 음란함 마저 전시되어 있다

  과학은 그녀의 뱃속에서 아기의 흔적을 읽어내고

  이천 년 전 먹은 위 속의 참외씨도 찾아냈다

  한 나라의 거룩한 징조를 알려주던 청동 대야는

  성묘객이 내민 지전을 받고 쟁쟁쟁쟁,

  청동빛 녹슨 기억 뱉어내고 있다

  낙양성 십리허에 사라진 영웅호걸들

  모두 이곳에 누워있다

  유보된 죽음을 응시하는 저 거리가

  이 세상 꽃 피고 지는 사이 일까

  처음과 끝을 알 수 없는 복원된 기억 어디쯤

  나의 미래도 흐르고 있는가

  순장된 시간이 나날이 새로움을 낳는

  거대한 박물관 밖으로 나오자

  복원된 시야 너머 짙푸른 초록이

  동공 속으로 와락, 빨려든다

 

웹진 『시인광장』 2010년 8월호 발표

 

 


 

김화순 시인

서울에서 출생. 2004년 《시와 정신》으로 등단. 고려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시집으로 『사랑은 바닥을 쳤다』(천년의시작, 2006)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