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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인과 시(현대)

박현수 시인 /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by 파스칼바이런 2020. 6. 5.

박현수 시인 /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내가 읽던 이 구절은

  숲의 어느 부분에 새겨져 있을까

  자작나무 밑동쯤일까

  잔가지 겨드랑이쯤일까

  숲은, 인간의 말들을

  어디쯤 철지난 현수막처럼 걸치고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밑줄 그은 이 구절,

  나무의 살갗에 새긴 문신은 흐려질까

  한 땀 한 땀마다

  솟아났던 푸른 울음들은 새살 돋을까

  숲은, 가시철사처럼

  파고드는 문장들을 뱉어낼 수 있을까

 

  이 책을 다시 숲으로 되돌린다면

  제 소리를 갖지

  못하는 이 구절은 사라지리라

  매미, 쓰름매미,

  숲에는 제 이름으로 노래하느니

  숲은, 탈피 껍질처럼 텅 빈

  인간의 문장들을 빗방울처럼 떨쳐 내리라

 

웹진 『시인광장』 2009년 겨울호 발표

 

 


 

박현수 시인

1966년 경상북도 봉화에서 출생. 199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울한 시대의 사랑에게』(청년정신, 1998)와 『위험한 독서』 (천년의시작, 2006)가 있음. 2007년 제39회 한국시협회상 '젊은 시인상'을 수상. 현재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