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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봄 시인 / 백색은 검정색을 딛고 온다
시간을 뭉텅뭉텅 베어 먹고 싶어요 이미 자란 것과 이제 막 자라는 것들 아직 자라지 않은 씨앗은 부리로 쪼아 먹고 싶어요 십이월이 새 태양을 출산하자 벽난로 속에서 천 개의 붉은 혓바닥이 피었어요 해마다 그 붉은 혓바닥에 천개의 진주로 피어싱을 해요 허기진 파도가 달려오고 나무들은 짠물을 들이키며 둥둥 바다로 돌아가요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코트 속에서 악보는 깨어나지 않아요 한 번도 노래를 만져보지 못한 아이들이 벽을 통과하며 깔깔 웃어요 나는 빨랫줄에 널어놓은 풀 먹인 이불호청을 걷어 바느질을 해요 네모로 마름질한 이불 모서리를 돌아 목화솜을 단단하게 시침질한 명주 실 사이로 몸을 부딪치며 하염없이 걸어 다녀요 갈비뼈 아래를 통과하던 매운 저녁연기가 흰 새의 양쪽 날개를 흔들어요 나는 세다 만 구름의 숫자를 처음부터 다시 세어야 해요 그런데 어째서 죽은 머리카락은 이렇게 계속 자라는 걸까요 .
웹진 『시인광장』 2009년 겨울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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